전은주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
[대한경제=박흥서 기자] 이석증은 주변이 빙글빙글 도는 듯한 심한 어지럼이 수초에서 1분 정도 지속되다가 저절로 좋아지는 일이 반복되는 증상이다. 전정기관 중 하나인 이석기관의 이석이 제자리를 이탈해 또 다른 전정기관인 반고리관에 들어가서 발생한다.
반고리관은 내림프액이라는 액체로 채워져 있다. 이곳에 이석이 들어가면 머리를 움직일 때 반고리관 안에서 이석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내림프액이 출렁거리게 되는데, 이같은 비정상적인 내림프액의 흐름은 평형감각을 자극해 가만히 있는데도 천장이나 주위가 빙빙 도는 듯한 심한 어지럼증을 일으킨다. 한자로 이석(耳石)은 귓속의 돌이라는 의미지만 실상은 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탄산칼슘 덩이다.
전은주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이석증은 모든 어지럼증의 원인질환 중 30~40%를 차지하는, 어지럼의 가장 흔한 원인 질환으로 가만히 있을 때는 괜찮지만 머리를 특정 위치로 움직이면 회전성 어지럼증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며 “이석증은 비교적 간단한 진단법으로 즉시 진단할 수 있고, 진단만 정확히 되면 적절한 물리치료로 빠르게 치료가 가능한 만큼 가능한 빨리 병원을 찾아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정 움직임 시 회전성 어지럼증 반복적으로 나타나
이석증의 정식 명칭은 영어 진단명을 그대로 번역한 ‘양성돌발체위변환현훈(benign paroxysmal positional vertigo; BPPV)’이다. ‘양성(陽性)’은 심각한 귓병이나 뇌질환이 없는 데도 어지럼이 발생한다는 것을, ‘돌발(突發)’은 갑자기 증상이 발생했다가 저절로 좋아지는 일이 반복(발작성)되는 것을, ‘체위변환(體位變換)’은 몸의 자세(체위) 변화로 인해 어지럼이 유발된다는 것을 각각 의미한다. ‘현훈(眩暈)’은 어지럼 양상 중 빙글빙글 도는 어지럼 양상을 뜻한다.
이석증에서 어지럼증이 나타나는 가장 흔한 자세는 앉았다가 뒤로 누울 때, 누워서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돌아누울 때 등이다. 순간적으로 천장이나 벽이 빙글빙글 도는 듯하고 바닥이 위로 솟구치는 듯한 극심한 어지럼증을 느끼게 되는데, 다행히 어지럼증은 오래가지 않고 보통 1분 이내에 멈춘다. 하지만 머리를 움직이거나 자세를 바꾸면 또다시 같은 증상이 반복해 나타난다. 울렁거리는 구역감이 동반되고, 심하면 구토까지 하며, 식은땀을 호소하기도 한다. 그러나 난청, 이명, 통증 등 귀와 관련된 다른 증상은 동반하지 않는다. 성별로는 여성에서 발병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은주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이석증은 주로 40대 이상 중·노년층에서 발병하는데 나이가 들면서 내이의 허혈로 이석이 불완전하게 형성되기 쉽고 이석기관의 퇴행성 변화로 유동성 석회화 물질이 쉽게 생길 수 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고 했다.
◇이석정복술 15분, 2~3회 받으면 90% 환자 치료
이석증은 보통 가만 놔두면 수주에서 수개월 후 저절로 없어지지만, 적극적으로 치료하면 훨씬 더 빨리 좋아질 수 있다.
진단에 가장 중요한 것은 병력과 이학적 검사다. 병력은 회전성 어지럼증이 갑자기 발생한 적이 있거나 머리 움직임에 따라 증상이 더 심해졌다면 의심할 수 있다. 이학적 검사는 머리와 몸을 특정 방향으로 움직일 때 나타나는 안구의 반사적인 비정상적 움직임(안진)을 관찰하는 체위안진 검사로 확인한다. 안진은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안구가 특정한 방향으로 반복해서 튀는 움직임을 말한다. 머리를 좌우로 45도 회전시킨 상태에서 뒤로 눕히면서 안진이 유발되는지 보거나, 누운 상태에서 머리를 좌우로 돌리면서 안진을 유발해 특징적인 증상과 안진이 나타나는 것을 확인한다.
전은주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이석증이 진단 자체는 단순해 보이지만 이석증이 양쪽 귀의 세 개의 반고리관에서 각각 발생할 수 있고, 또 이석증 유형이 반고리관 결석증과 팽대부릉형 결석증 두 종류로 더 나뉘기 때문에 모두 12가지 아형의 이석증이 가능하며, 여기에 2개 이상의 반고리관에 동시에 이석증이 생기는 다발성 이석증이나 보다 비전형적인 기타 아형들도 여럿 있다”면서 “이런 부분에 대한 세부 지식을 숙지하고 안진의 양상을 면밀히 관찰하고 분석해야 정확하게 병변이 발생한 반고리관을 찾아낼 수 있고 그에 따라 치료의 정확도도 높일 수 있다”고 했다.
이석증은 ‘이석정복술’이라는 물리치료를 통해 치료한다. 이석정복술은 반고리관의 내림프액 속에 흘러 다니는 이석 입자를 제 위치인 난형낭 쪽으로 돌려보내는 방법으로, 환자의 몸과 머리를 일련의 방향과 각도로 움직여주는 치료다. 치료 시간은 약 15분으로 통증은 없지만 시술 중 어지럼증이 있을 수 있다. 대개 2~3회 치료로 약 90%에서 성공적으로 치료된다.
◇재발률 높지만, 규칙적 운동·활동 통해 골대사 증진하면 예방
이석증이 의심된다면 일단 이석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가급적 머리나 몸을 급격히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다. 특히 머리를 돌리거나 뒤로 젖히는 등의 과도한 움직임은 줄이고 취침 때까지는 되도록 머리를 세운 채로 앉은 자세를 유지한다. 과거에는 치료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치료 후 48시간 동안 눕지 않고 앉은 자세로 있게 했지만 최근 여러 임상연구에서 이같은 과도한 자세 고정은 불필요하다는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이석정복술을 여러 번 시행해도 잘 낫지 않는 경우에는 어지럼증을 일으키는 특정 자세를 반복적으로 취하게 하는 ‘습관화운동’을 하기도 한다. 몇 달 동안 치료해도 낫지 않는 난치성 이석증은 반고리관을 막는 반고리관폐쇄술이라는 수술적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
이석증은 재발이 잦은 편이다. 독일 뮌헨대 신경과 연구진이 이석증 환자 125명을 6~17년간 관찰한 결과, 5년 이내 평균 재발률이 33~50%였다. 그렇다고 만성 재발성으로 발전하는 질환은 아니다. 재발할 경우 가까운 전문의를 찾아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받으면 바로 호전될 수 있다.
이석증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뚜렷한 방법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평소 가벼운 운동과 규칙적인 야외활동을 통해 골대사와 혈액순환을 증진하고, 골다공증을 예방하는 생활 수칙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전은주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최근 비타민 D 결핍이 이석증 발생과 관련이 있다는 보고가 있는 만큼 매일 햇볕을 쬐어 비타민 D 체내 형성을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평소 머리를 거꾸로 하는 등의 비정상적인 자세를 피하고, 머리 쪽에 충격을 주지 않도록 하는 것도 이석증 재발을 막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인천=박흥서 기자 chs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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