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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한 어미 소 폭우에 잠겨 신음만…배수장 고장 의혹에 농민들 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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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5-07-18 10:30:07   폰트크기 변경      
홍성군 홍북읍 갈산리 축산농가 침수, 배수장 고장 의혹에 “자연재해 아닌 인재” 비판 확산

폭우로 물에 잠겨 우왕좌왕 하고 있는 소들 모습 / 사진 : 나경화 기자


[대한경제=나경화 기자] 충남 홍성군 홍북읍 갈산리에서 축사가 물에 잠겨 수백 마리 소가 익사하거나 고립된 가운데, 배수장 고장으로 인한 ‘인재’(人災) 의혹이 거세지고 있다. 집중호우가 원인이 아니라 관리 실패가 낳은 참극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며 한국농어촌공사 홍성지사의 책임론이 불붙고 있다.

충남도청 18일 오전 6시 호우특보에 따르면 지난 16일과 17일 예산군이 충남에서 가장 많은 강수량으로 380mm, 홍성군 369.34mm의 물 폭탄이 쏟아진 가운데 삽교천 수위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지난 17일 오전 5시 30분 무렵 갈산리 일대 5개 축산농가에 갑자기 물이 밀려들면서 평소 아무리 많은 비가 와도 거뜬했던 축사가 순식간에 침수됐다.

가장 깊이 자리한 농장에는 송아지 70마리를 포함해 200여 마리의 소가 있었는데, 송아지 상당수가 익사했고, 임신한 어미 소까지 물에 잠겨 신음하고 있었다. 물 위로 겨우 머리만 내밀고 버티는 소들을 바라보며 농민들은 발만 동동 굴렀다.

농민 A씨는 “배수장이 멈춰 물이 밀려들어 배수장을 몇 차례 찾아갔지만 아무도 없었다. 송아지와 소들이 물에 잠겼지만 공무원들은 현장에 와서 상황만 보고는 ‘알아보겠다’는 말만 남긴 채 사라졌다”며 “우리 가족 같은 소들이 물에 잠겨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보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며 울분을 토했다.

농민들에 따르면 평소엔 배수장 덕분에 침수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이날 배수장이 갑자기 작동을 멈췄고, 그 틈을 타 물이 역류해 축사로 들이닥쳤다고 주장했다.

농어촌공사 홍성지사도 배수장 고장 사실은 인정했다. 관계자는 “일시적인 고장이 있었지만 1시간 만에 다시 가동됐다”며 “배수장이 물에 잠기면서 외형상 고장처럼 보였던 것으로 착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해명에 대해 현장 농민들은 “고장이 분명했고, 침수 전에 정상 가동 되었다면 이런 피해는 없었을 것”이라고 강하게 반박하고 있다.

피해 현장을 찾은 문병오 홍성군의원은 이번 참사는 ‘명백한 인재’라며 “자연재해로 포장하기엔 석연치 않은 점이 너무 많다. 농어촌공사의 부실한 시설 관리와 대응 실패가 낳은 비극”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군의회 차원에서 철저한 원인 규명과 책임자 문책, 대책 마련까지 전방위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집중호우가 아니라 사전 경고·대응 체계 부재, 배수장 관리 실패, 이후 방치까지 겹친 총체적 관리 부실이 낳은 인재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 재난 대응 체계의 허점은 곧바로 생명과 생계의 위기로 이어진다. 자연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시스템의 부재’가 반복되지 않도록, 이번 사태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수십 년 간 피땀 흘려 키운 생명들이 하루아침에 침수되어 오도 가도 못해 송아지가 익사하고 임신한 어미소가 신음하는 자리에 농민들의 울분만이 홍성 갈산 들판을 뒤덮고 있다.


폭우로 물에 잠긴 축사 모습 / 사진 : 나경화 기자



홍성=나경화 기자 nkh6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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