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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합리한 건설제도·관행 손질…90만 기술인 자긍심 높이겠다”
기사입력 2022-04-25 11:32:16   폰트크기 변경      
윤영구 제14대 한국건설기술인협회장 취임 한 달…최우선과제는 건설기술인 자부심·처우 회복

윤영구 한국건설기술인협회장은 취임 한 달을 맞아 건설기술인들의 자긍심 고취와 불합리한 제도의 합리적인 개선방향을 역설했다. 안윤수기자 ays77@

친구 따라 우연히 건설기술인의 길로 접어든 모범생은 지난 40여 년 간 건설기술인으로 치열하게 살아온 삶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대형건설사의 사원으로 시작해 CEO(최고경영자) 자리에까지 오르며 그의 가슴 속은 건설기술인의 자부심과 자긍심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 한국건설산업의 주역인 건설기술인의 입지가 갈수록 줄어들더니 급기야 ‘토건족’, ‘갑질’, ‘꼰대’라는 따가운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그는 홀대받는 건설기술인을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속절없이 지켜보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힘들었다.

그가 90만 건설기술인으로 구성된 한국건설기술인협회의 새 수장에 주저없이 도전한 이유다.

회원들은 그를 새 건설기술인협회장으로 직접 선출하며 그의 어깨에 무거운 책임을 지웠다.

이달 26일로 취임 한 달을 맞은 윤영구 제14대 한국건설기술인협회장 얘기다.

윤 회장은 건설기술인에 대한 지금의 ‘혹평’을 ‘호평’으로 바꿔놓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를 만나 건설기술인의 꺾인 자부심과 자긍심을 높이고, 권익을 향상시키기 위한 구상에 대해 들어봤다.


윤영구 한국건설기술인협회장은 취임 한 달을 맞아 건설기술인들의 자긍심 고취와 불합리한 제도의 합리적인 개선방향을 역설했다. 안윤수기자 ays77@

△제14대 회장으로 취임한지 한 달이 됐다. 밖에서 바라본 협회와 안에서 느끼는 협회는 어떤가?
먼저, 성원해 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건설 관련 최대 단체를 이끈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큰 영광이다.

그러나 90만 건설기술인을 위해 제대로 일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져야 하는 자리여서 어깨가 더욱 무겁다.

밖에서 본 협회와 안에서 느끼는 협회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내로남불’이다.

외부에서 협회를 봤을 때는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하면서 직원은 많고, 한 번에 처리 할 수 있는 등록업무를 몇 차례에 걸쳐 처리하는 등 회원에게 ‘갑질’을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니 경력관리 업무가 보통 복잡한게 아니고, 직원들 업무 강도가 너무 심해 직원도 충원해야 할 상황이다.

경력관리업무 자체도 3D 성향이 있어 과도한 업무량에 비해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기 어렵다. 묵묵히 일하는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업무 시스템 개선 등으로 적절한 해결방법을 찾고, 회원들이 체감할 수 있는 사업을 추진해 회원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협회를 만들겠다.

△건설인은 ‘토건족’, 건설문화는 ‘갑질·꼰대’, 건설산업은 ‘사양산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건설기술인이 처한 냉정한 현실과 위상을 높이기 위한 방안은?

건설기술인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투명하면서 공정한 이미지 구축을 위해 자정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튼튼하고 안전한 시설물을 만들려는 전문가다운 책임감을 가져야 하고, 잘못된 관행과 문화를 척결하려는 노력을 선행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부정적 평가를 씻어내고, 실추된 이미지를 살려낼 수 있다.

협회는 건설산업의 경제 기여도와 중요성을 알리고, 기술인들의 활약상을 조명하는 콘텐츠를 개발해 대국민 홍보를 해 나갈 것이다.

또한 관련 협·단체 및 학회, 정부기관과 네트워크를 강화해 기술인과 관련된 현안 사항을 해결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자정 노력과 실추된 이미지 개선과 함께 법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건설기술인에게 포괄적 책임이 아닌, 명확한 책임과 권한이 부여돼야 하고, 엔지니어링이나 감리 대가, 공사비 산정 등 정부의 예산산정기준 개선도 필요하다.

건설정책 수립 때는 건설기술인을 참여시켜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

앞으로 건설기술인에게 부당한 것은 단호히 대응하고, 잘못된 것은 개선하며, 필요한 것은 말할 수 있는 협회로 거듭나겠다.

△‘공정건설지원센터’ 신설 등 건설기술인의 권익 보호를 위한 법·제도가 일부 개선됐다. 그러나 아직 실효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공정건설지원센터의 설립과 운영은 건설기술인에게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현재 협회에서 공정건설지원센터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방안들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공정건설지원센터에 앞서 건설기술인들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게 필요하다.

건설기술인들이 현장에서 가장 힘들어 하는 부분이 제도와 법규를 모두 지키면서 프로젝트를 완수하는 일이다.

현장에서 근무할 때 건설 관련 법규를 살펴보니 법의 상당부분이 처벌에 관한 내용들로 구성돼 있었고, 노동부, 과기부 등 여러 부처에 걸쳐 있는 타에 법과 제도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지금은 중대재해처벌법 등 규제는 더 늘어났고, 현장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건설 관련 법규들을 정비하고, 보상 전 착공, 간접비 불인정 등 관행이 돼 버린 불평등한 계약을 고쳐 일한 만큼 보상과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건설기술인의 의견을 반영해 성장을 가로막는 법과 제도, 현장의 불합리한 관행들을 고치는 동시에 부당한 요구와 지시에 대해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공정건설지원센터를 활성화하고, 실효성을 확보하겠다.

△건설기술인의 전문성 고도화를 위한 교육이 여전히 미흡하고, 재취업도 어려운 실정이다. 협회에서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봐야 하는 교육과 취업은 개인과 단체, 국가의 역할이 다르다.

협회의 경우 개인, 단체, 국가가 해결하지 못하는 빈틈을 찾아 채워주는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예컨대 대기업의 경우 직급별 업무능력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데, 중소기업으로 갈수록 그런 시스템을 갖추기 어렵다.

이런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도록 협회가 건설기술인의 업무능력 향상을 위한 업체별, 직급별, 직책별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찾아가는 맞춤형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업무수행능력과 기술력 향상을 위해 국내외 건설제도 해설, 신기술 교육 등도 온·오프라인으로 실시할 계획이다.

4차 산업혁명과 포스트 코로나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ICT(정보통신기술) 기반 기술 역량을 확보할 수 있도록 교육·포럼을 적극 지원하고, 비대면 현장견학을 실시해 배움의 기회를 넓혀 나가겠다.

이런 교육이 취업 및 재취업으로 연결되는 선순환이 이뤄진다면 가장 좋은 구조다.

△윤영구 회장만의 색깔을 담은 협회 운영 방향은?

90만 건설기술인이 모인 유일한 단체라는 게 협회의 강점이면서도 반대로 하나로 모으기 힘들다는 게 단점이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가고, 멀리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속도가 늦더라도 흩어진 구슬을 꿰어 보배로 만드는 지혜와 화합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앞으로 협회, 기술인회, 위원회로 크게 3개 축으로 나눠 운영하는 로드맵을 그리고 있다.

경력관리 등 기존 업무를 협회가 담당하고, 기술인들과의 소통·화합은 건축·토목·기계·조경·안전관리·환경·전기전자·도시교통 등 8개 분야별 기술인회가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전국 12개 시·도 지회에 기술인회를 설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정책·제도 개선, 회원 권익보호, 대국민 이미지 홍보 등 신규 사업 발굴과 추진은 위원회가 맡도록 할 생각이다.

현재 이 부분에 대한 세부 액션 플랜(Action Plan)을 준비하고 있다.

액션 플랜이 마련되는 되는대로 회원들과 공유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앞서 말한 3개의 축이 긴밀한 협조체제를 만들어 협회가 회원들과 소통하고, 화합하는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하겠다.

△청년, 여성 등 상대적으로 소외된 건설기술인에 대한 지원방안은?

지난 선거를 준비하면서 청년, 여성 건설기술인들을 만났다.

여성 건설기술인들은 “다른 건 필요 없고, 남·여 구분만 없으면 된다”고 입을 모았다.

그동안 남·여를 구분하던 이분법적 사고와 문화를 바꿔야 여성기술인들이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는 뜻이다.

청년 기술인들은 다른 업종에 비해 낮은 보수, 안전에 대한 과중한 책임, 수직적인 조직문화를 얘기하며 이런 분위기에서 과연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할 수 있겠냐고 되물었다.

주 5일, 주 52시간 근무 등 워라밸 문화를 지방현장까지 확산시키고, 원청뿐만 아니라 협력업체에도 이런 분위기를 정착시켜야 한다.

또 청년층의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 권한과 책임, 그에 따른 대우가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

협회는 여성·청년 건설기술인 지원을 위해 이를 전담할 TF팀을 구성하는 등 상대적으로 소외된 건설기술인들의 애로사항을 반영해 실질적인 정책들을 마련할 것이다.

△어떤 협회장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평생을 건설산업에 몸 담으면서 대한민국을 일궈낸 주역으로서 내가 느꼈던 긍지와 대우를 동료, 후배 건설기술인들에게도 만들어주고 싶다.

임기 동안 이런 부분들이 건설기술인들에게 조금이라도 전달될 수 있다면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건설기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다시 빛날 건설산업과 건설기술인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성심을 다할 것이다.

만난 사람=봉승권 건설경제부장

정리=박경남기자 k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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