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간 2.8년꼴로 새 신기술 인증…부처마다 ‘딴 살림’ 경쟁
고비용ㆍ저효율 ‘통행세’ 전락…부처ㆍ인증기관 공생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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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대한경제=김태형 기자] 올해로 신기술(NET, New Excellent Technology) 인증제도가 본격 도입된 지 33년째다. 하지만 신기술을 발굴하고 인증된 제품의 판로를 뚫어 산업발전을 돕겠다는 당초 취지와 달리 중앙부처마다 신기술을 경쟁적으로 쏟아내면서 고비용ㆍ저효율의 ‘통행세’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처들이 저마다 ‘딴 살림’을 차린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신기술 원조는 1989년 도입된 건설신기술. 이후 평균 2.8년마다 새 신기술 인증제도가 생겨났다. 1993년 산업 신기술이 나왔고, 이어 농업기계(1996년), 환경(1997년), 방재(2007년), 농림ㆍ수산식품(2009년,) 보건(2009년), 해양수산(2015년), 목재제품(2015년) 등 전 분야로 빠르게 확산됐다. 현재 8개 부처가 11개 신기술 인증제를 운용 중이다. (표 참조)
국토교통부가 건설과 교통, 물류 등 가장 많은 3개 신기술 인증을 운영 중이며, 농림축산식품부가 2개(농업기계ㆍ농림식품)로 뒤를 잇고 있다. 이외에도 산업통상자원부와 행정안전부, 환경부, 해양수산부, 보건복지부, 산림청 등 관련 산업군이 활발한 부처들은 대부분 신기술 인증제를 하나 이상씩 갖고 있다.
문제는 부처별로 운영 규정과 지정 난이도가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따기 쉬운 신기술을 찾아 타 부처로 ‘원정 인증’을 가는 이유다. 부처별로 관련 신기술을 장려하겠다며 벌이는 이른바 ‘활성화 대책’도 기업들의 혼란과 이중 부담을 초래한다. 이로 인해 특정 부처 사업에 신기술을 적용하려면 관련 신기술을 다시 취득해야 하는 ‘중복 인증’이 늘고 있다.
정부도 부처별로 분산된 신기술 인증제도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대책을 내놨다. 지난 2015년에는 ‘중소기업 부담완화를 위한 인증제도 혁신방안’을, 이듬해인 2016년에는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신기술(NET)ㆍ신제품(NEP) 인증제도 통합운영요령’을 발표했다. 부처별로 다르게 운영하는 인증절차로 인한 신청기업의 혼란과 새 인증제도의 지속적인 신설로 인한 중복인증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주요 방안으로는 △수수료 상한선 설정 △서식 통일화 △신속인증제 도입 등을 제시했다. 당시 대책을 근거로 지금도 각 부처마다 ‘신기술 통합 인증요령’을 고시하고 있다.
하지만 대책의 약발은 오래가지 못했다. 인증 절차와 수수료 상한선 등은 형식적으론 통일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기업들의 체감도는 인증기관별로 천차만별이다. 신기술업체인 A사 대표는 “현장평가와 심사위원의 전문성은 물론이고 신기술마다 기업들이 유무형으로 부담하는 비용도 격차가 크다”고 말했다.
이는 국가 공인 신기술을 평가ㆍ지정하는 위탁기관의 전문성과도 관련이 깊다. 부처마다 산하 기관에 신기술 인정업무를 맡기고 있는데, 수탁기관마다 인적 구성과 전문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건설, 교통, 물류 등 3개 신기술을 관리하는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은 가장 까다롭고 엄격한 전문기관으로 정평이 나 있다. 반면, 일부 민간 위탁기관에선 가장 기본적인 통계조사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혼란을 빚기도 했다.
그렇다고 위탁기관을 바꾸거나 공공기관이 직접 수행할 수도 없다. 부처 산하 신기술 인정기관은 이미 중앙부처 퇴직 공무원들의 ‘플랜B’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 수백여명의 일자리와 직결된 각 인증기관의 생존논리도 세월과 함께 더 단단해졌다.
한 신기술 평가ㆍ지정기관 관계자는 “대부분 신기술 인정기관이 부원장(부회장) 자리를 중앙부처에 내주고 있다”며, “낙하산 자리가 유지되는 한 관련 신기술과 인정기관의 생명도 효율성과 무관하게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산업군별로 특화된 신기술 인증제도는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유사 분야에서 신기술이 지속적으로 쪼개져 새로 만들어지거나, 중복된 내용의 신기술을 이름만 바꿔 타 부처에서 다시 인증받는 것은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신기술업체인 B사 대표는 “최근 급증세인 방재신기술의 상당수가 건설신기술과 겹친다”면서, “인증 신기술의 값어치가 좀 더 따기 쉽고, 많이 써주는 곳으로 쏠리면서 당초 기술 혁신을 통한 산업발전이라는 취지가 무색해졌다”고 지적했다.
김태형기자 k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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