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 임원 3명은 실형 선고… “낙찰 단가 상승으로 국고 손실 초래”
[대한경제=이승윤 기자] ‘6조원대 철근 입찰 담합’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국내 7대 제강사들이 1심에서 억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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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 사진: 대한경제 DB |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재판장 최경서 부장판사)는 19일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현대제철에 법정 최고형인 벌금 2억원을, 동국제강에 벌금 1억5000만원을 각각 선고했다.
시장 점유율 1위 업체인 현대제철이 이번 담합을 주도했고, 업계 2위인 동국제강도 현대제철과 함께 물량 배분 논의를 주도했다는 이유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대한제강, 한국철강, 야마토코리아홀딩스(옛 와이케이스틸), 환영철강, 한국제강 등 5곳에도 ‘담합 관행을 이용해 회사의 이익을 확보했다’는 이유로 각각 벌금 1억원이 선고됐다.
공정거래법 위반 및 입찰방해 혐의로 기소된 7대 제강사 전ㆍ현직 임직원 22명은 각각 징역 6~10개월의 실형이나 징역형의 집행유예, 500만~30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강학서 전 현대제철 대표이사(사장)에게는 벌금 3000만원이 선고됐다.
특히 담합을 주도한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의 일부 고위 임원들에게는 실형이 선고됐다. 김영환ㆍ함영철 전 현대제철 영업본부장(전무)은 각각 징역 8개월, 6개월의 실형 선고와 함께 법정 구속됐다. 구속 기소됐던 최원찬 전 동국제강 봉강사업본부장(전무)에게도 징역 10개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이들은 지난 2012~2018년 조달청이 발주한 철근 연간단가계약 입찰에서 사전에 낙찰 물량을 배분하고 입찰 가격을 합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 수사 결과 이들은 민간용 철근의 가격을 부풀린 허위 자료를 조달청에 제출해 입찰 기초가격이 높게 선정되도록 유도한 뒤, 업체별 물량과 가격을 사전에 합의해 공유하는 방식으로 부당 이득을 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결과 담합에 참여한 업체들은 7년간 단 한 번의 탈락도 없이 관급용 철근을 낙찰받아 왔을 뿐만 아니라, 민간시장보다 더 큰 이익률을 거둔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이들이 벌인 담합 규모를 관급 입찰 사상 최대인 6조8442억원으로, 국고 손실 규모를 6732억원으로 산정했다.
법원은 이들의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합의로 인해 입찰 담합 기간 동안 관수철근의 단가가 민수철근보다 높게 형성되는 등 낙찰단가가 상승했고, 이로 인해 조달청이 구매대금을 더 많이 지출하게 돼 국고손실이 초래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철강업계의 담합은 오랜 기간 관행으로 정착됐다”며 “피고인들은 민수철근 판매 및 철스크랩 구매 관련 담합 행위에 대해 행정ㆍ형사제재가 거듭되는 와중에도 관수철근에 관한 입찰 담합을 중단하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입찰 담합은 각 회사별로 ‘고위급 임원의 지시 내지 묵인→ 담당 임원이나 간부급 직원들의 구체적인 실행 지시→ 실무 담당 직원의 담합 실행’ 방식으로 장기간에 걸쳐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며 구체적인 입찰 담합을 맡았던 실무자들보다 장기간에 걸쳐 입찰 담합을 지시ㆍ승인한 임원들의 책임이 더 무겁다고 봤다.
아울러 법원은 조달청의 행정 편의적인 입찰제도 운영도 이들의 범행에 기여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을 내놨다.
재판부는 “최저가납품동의제 등 관수철근 입찰제도의 행정 편의적 운영과 조달청이 민수 실거래 가격 조사 과정에서 피고 회사들의 제출 자료를 확인해 보려는 충분한 노력 없이 입찰업무를 진행해 온 점 등이 입찰 담합이 장기간 지속되는 데에 암묵적으로 기여한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이승윤 기자 le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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