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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창
[마음의 창] 36년의 점묘화
에어컨 설치 기사의 하얀 윗옷이 얼룩얼룩하다. 청색 잉크가 번진 듯 연한 빛이다. 35도가 넘는 날, 손목까지 덮은 긴 팔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답답하게 한다. 땀이 흠뻑 나자 하얀 티셔츠가 몸에 붙어 그의 등 뒤로 용 한 마리가 드러난다. 빤히 쳐다보는 내 눈빛을 의 ...
2019-10-28 07:00
[마음의 창] 입에 달고 사는 말
보일러를 틀었다. 머리만 감고 나와서 보일러를 끄고 샤워를 시작했다. 오 분도 지나지 않아 물이 미지근해졌다. 서두른다고 서둘렀지만, 샤워를 다 끝내지 못했는데 찬물이 쏟아졌다. 시월에 찬물로 샤워하는 건 내 몸을 학대하는 일이다. 별수 없이 대충 물을 닦고 나와 다시 ...
2019-10-25 00:00
[마음의창] 그대만을 영원히
초록의 건강한 잎과 단단한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동백숲 길을 심호흡을 하며 걷는다. 하늘도 청명하고 바다도 푸른 가을 한낮에 멀리 숲 사이로 유조선 한 척이 한가롭게 떠 있다. 여기는 여수의 오동도다. 그야말로 어느 쪽을 봐도 풍경이 그대로 그림이다. 한참을 걷다가 ...
2019-10-24 07:00
[마음의 창] 가을운동회 하던 날
집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에 만국기가 펄럭인다. 운동회가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때마침 함성이 터지는 걸로 보아 달리기 순서가 아닌가 싶다. 그러고 보니 운동회 하기에 딱 좋은 날씨, 완연한 가을이다. 가을 하면 파란 하늘과 코스모스가 떠오른다. 또 발갛게 익어가는 감 ...
2019-10-23 07:00
[마음의 창] 쑥대머리
가을날 저녁녘에는 노래를 들을 일이다. 아이돌이 부르는 노래여도 좋고, 이미자가 부르는 곡이어도 괜찮다. 클래식이든 팝송이든 가리지 않는다. 국악은 찰싹 귀에 달라붙는 맛이 있다. 휘모리장단 빠른 곡은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고, 느린 진양조 가락에는 언 마음이 녹는다. ...
2019-10-21 07:00
[마음의 창] 춤추는 풀
소리에 몸을 떠는 식물이 있다. 음악을 들려주면 이파리들이 덩달아 율동을 한다. 은밀한 귀라도 열린 듯 박자에 맞춰 줄기 끝 작은 잎들이 살랑대는 모습이 앙증스럽다. 무초(舞草), 외국에서 들여온 풀이란다. 식물체 안의 물관 이동에 따라 세포 속 압력이 변하여 음악에 ...
2019-10-18 07:00
[마음의 창] 행복한 게걸음
계단을 내려가는데 발뒤꿈치에서 종아리까지가 뻐근하다. 할 수 없이 난간을 붙잡고 발을 옆으로 돌려 걷는다. 새끼 게 앞에서 뽐내며 걷는 어미 게가 된 거 같아 픽 웃음이 난다. 매주 토요일 산행을 한 지 6개월, 이제는 자신감이 붙어 지난 토요일 광청종주를 했다. 광 ...
2019-10-17 07:00
[마음의 창] 내려놓기
산자락에 감나무가 지천이다. 단체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목이다. 가을 반물색 하늘 아래 주황색 감들이 주렁주렁 사태를 이루고 있다. 저 과물들을 빚기 위해 감나무는 봄의 진통과 여름의 힘겨움을 견뎌냈으리라. 모든 게 멸렬하는 계절에 과물만 황금 빛깔로 빛난다. 과물 ...
2019-10-16 07:00
[마음의 창] 기회의 땅, 아프리카
연초 아프리카의 말라위를 다녀왔다. 아프리카는 내가 알던 땅이 아니었다. 책에서 읽고 사진으로만 보던 아프리카는 빈곤과 황무지와 역병의 땅이었다. 그런 나의 왜곡된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은 환승지에서부터 빗나갔다. 에티오피아의 공항은 여행자들로 만원이었다. 하긴 바퀴의 ...
2019-10-15 07:00
[마음의 창] 호의를 베풀지 말았어야 했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면 어디서 나는지 구린내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냄새의 진원지를 찾았다. 잔디 풀 섶 속에 배설물이 숨어 있다. 형태로 봐서 옆집 개 달이의 소행 같다. 녀석은 가끔 우리 집으로 와서 영역표시를 하거나 배설물을 남기고 간 적이 몇 번 있었다. 요 ...
2019-10-14 07:00
[마음의 창] 큰 언니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하마터면 자전거 사고가 날 뻔했다. 폐지를 실은 수레가 골목에서 툭 튀어나온 탓이었다. “아이쿠, 깜짝이야” 자전거를 급정거하고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데 수레 뒤에서 허리 굽은 할머니가 나타났다. 놀란 나에 비해 다행히 할머니는 괜찮아 ...
2019-10-11 07:00
[마음의 창] 너무 슬픈 어른이 되지 않기를
밥벌이가 신통치 않아 논술 과외 광고를 올렸었다. 고등학생 한두 명만 가르쳐서 집세라도 버는 게 목적이었다. 어느 날, 젊은 남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초등학생은 안 되냐고 물었다. 솔직히 말해서 초등학생은 하고 싶지 않았다. 잠시 망설이는 내게 남자가 말했다. 혼자 딸 ...
2019-10-08 07:00
[마음의 창] 디지털 시대의 상속방법
지인 중에 슬하에 1남 3녀를 두고 고희에 이른 부부가 있다. 네 자녀 모두 출가했는데 밖에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만날 때마다 자식들 얘기를 수시로 했는데 언제나 자랑보다는 걱정거리가 더 많았다. 아들은 외아들이라서 장차 이어받게 될 기제사로 힘들까 ...
2019-10-04 07:00
[마음의 창] 향기에 반하다
아까부터 누군가 자꾸 날 부르고 있다. 이제 정오가 지났건만 벌써 네 번째 그와 눈을 맞춘다. 눈만 맞추는 게 아니고 그에게 얼굴을 갖다 대고 스킨십을 한다. 입술에 와 닿는 느낌보다 코에 스미는 향기가 아찔하다. 심호흡을 크게 한 후 그를 깊이 들이마신다. 향기가 잠 ...
2019-09-26 08:38
[마음의 창]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대학 때 두 시간 연강인 교육학 시간에 깜박 졸다가 깨면 교육학 교수는 가늘고 높은 억양으로 ‘어어,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반복하여 말하곤 했다. 그 질문의 정답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교수의 특이한 억 ...
2019-09-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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