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갔다 들어오는 길에 아파트 화단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봤다. 겨우내 보이지 않다가 날이 풀리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반갑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었다. 어디 있다 왔을까. 혹한이 내려앉고 칼바람이 불 때마다 아파트를 떠돌던 고양이들이 생각났었다. 이 추위를 어떻게 견디는지, 먹이는 어떻게 먹는지 걱정스러웠다. 옛날에, 아주 옛날에 이런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나서 센트럴파크 연못의 오리는 한 겨울을 어떻게 나는지 궁금했었다. 연못은 얼어붙고 먹이도 없을 텐데 오리는 무슨 수로 겨울을 날까. 그 궁금증이 다시 고양이에게로 향했다. 한 여름에는 아파트 주민 누군가 그 고양이들을 위해 물이나 먹이를 챙겨주며 제법 살뜰하게 보살펴 주는 것 같았는데 겨울이 되면서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그 고양이들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 고양이들 가운데는 새끼를 데리고 다니는 고양이도 있었고, 홀로 고독하게, 때로는 여유있게 다니는 고양이도 있었다. 그런 고양이들이 봄볕을 찾아 발밤발밤 나선 것이다. 제법 살집도 있는 것이 그간 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아파트 지하 공간 어딘가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지내다 봄기운에 끌려 나온 듯 눈에는 졸음도 가득했다. 볕이 좋아 나온 것이 어디 고양이 뿐일까. 어느 봄볕 좋은 날 미세먼지가 잠시 주춤하자 아파트 중앙분수대 주변에는 모처럼 사람 사는 기척으로 들썩였다. 한겨울 내내 얼음으로 뒤덮여서는 삭풍만 몰아치던 곳이 그곳이었는데, 오랜만에 엄마를 졸라 나온 아이들로 활기가 넘쳐났다. 그 아이들의 맑은 웃음과 젊은 엄마의 등장은 정말 어느 봄꽃보다 더 반갑고 화사하다. 봄의 전령사는 또 있다. 이맘때쯤이면 분수대 주변 쉼터에는 또 다른 반가운 사람이 찾아온다. 주변 개활지에 텃밭을 만들고 애써 가꾼 푸성귀들을 싸들고 와 파는 할머니들인데, 봄볕 좋은 날, 한 할머니가 직접 거둔 작물을 들고 와 팔고 있었던 것이다. 생강이었다. 아직 바람결에 겨울의 냉기가 묻어 있는데도 할머니는 푸짐하게 생강을 부려놓고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픈 동생을 위해 나는 그 할머니에게서 생강 한 봉지를 샀다. 아니, 내가 산 건 생강이 아니라 봄이었다. 봄이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불러 깨우고 있었다. 그렇게 봄도 만나고 봄도 샀으니, 이제 나도 슬슬 봄맞이 채비를 해야겠다. 내 마음의 묵은 아집을 벗겨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이 봄을 맞이해야겠다.은미희(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