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의 기도는 온몸으로 하는 기도다. 손을 들고 하늘을 보며 울부짖거나 무릎을 꿇은 채 진액을 쏟는다. 방방 뛸 때도 있고 뒹굴 때도 있으며, 이마로 땅바닥을 연신 찧을 때도 있다. 신은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은 적이 없다. 비를 내려달라 기도하면 반드시 비를 내려주고, 바닷바람을 그치게 해달라 하면 폭풍은 그치고 바다 물결은 잠잠해진다. 언제나 기도는 비가 올 때까지, 바람이 그칠 때까지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인디언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정신이 번쩍 든다. 덤덤하게만 반복되는 일상에서, 내 생의 전부를 걸어도 좋을 일 하나 붙잡았다면 대단히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 같다. 모든 것을 던져서라도 얻어내고야 말 기도제목이란 신이 도와주지 아니하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인지 모른다. 역경에 처해 발버둥치는 기도를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다. 치열하지 못한 세월이 멍청해서 안타깝다는 말이다.
설렁설렁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보다는 머리를 짓누르는 압박감을 받으면서도, 이를 풀려고 안간힘 쓰며 기도하는 삶을 사는 이가 더 보람 있는 인생이다. 자신은 아직 즐거움을 향유하지 못했을지라도 훗날 돌이켜보면 그 열심이, 그 열정이 순간순간을 진정으로 알차게 살게 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인디언의 기도에는 중단이 없다. 기도 응답을 받을 때까지 끈질기다. 기도하다가 중단하면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떻게 기도를 중단할 수 있겠는가. 도무지 이룰 수 없는 것을 붙잡고 끙끙거리더라도 마냥 어리석게만 보이지 않는 것은 혼이 담긴 집념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하든지 우직하리만큼 한 우물을 파는 집착이 어떤 것인지, 인디언의 기도는 온몸으로 알려주고 있다.
인디언처럼 드릴 수 있는 기도제목이 무에 있을까. 끝내 이루어내고야 마는 기도를 해보지 못했다. 온몸으로 드리는 기도제목도 가져보지 못했다. 지금 나와 연관하여 숨 가쁘게 돌아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노인의 삶은 원래 그런 것이다. 부러워할 것도 안타까워할 필요도 없다.
젊은 시절 묵직한 기도 보따리 하나 가져보지 않은 사람 없을 터이고, 세상은 언제나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이제는 한참 비켜서 있는 세월이 아닌가. 너무 버거운 기도제목을 붙들고 끙끙대는 것만은 노인이 할 일이 아니다. 마음속에서는 지글지글 끓는 게 있더라도 바쁜 기색 없이 살살 걸어가야 아름답게 보일 터, 유쾌하고 가벼운 생각만 하며 살아야겠다.
최종(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