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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CPM공정관리를 해야만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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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5-09 07:00:18   폰트크기 변경      
   

 서강대 최진석 교수가 그의 저서 <경계에 흐르다>에서 ‘한쪽을 택하면 과거에 막히고, 경계에 서면 미래로 열린다’며 정곡을 찌른다. 간만에 정신 번쩍 들게 하는 철학자다. 동년배인데 압도적으로 깨어 있다. ‘과거에 고착되어 있으면 진보적인 삶은 구현되지 못한다. 지속 부정을 통해 부정을 살아있게 해야 한다.’ 속 시원한 역설이다.

요즘 공기관련 분쟁 때문에 건설현장 공정관리를 깊숙이 들여다볼 기회가 많다. 공기관련 분쟁 대부분은 공기지연 책임을 다투는 것이다. 법정에서는 대부분 CPM공정관리를 근간으로 판단한다. 국내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 제대로 된 CPM공정관리 기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법정에서 받아들여지는 제대로 된 CPM공정관리란 무엇인가? 첫째, 공사초기에 합의된 완전한 CPM공정표가 있어야 한다. 완전한 공정표란 네트워크상 모든 작업들이 선·후행으로 연결되어 있고, 빠지거나 생략된 작업이 없는 것이다. 둘째, CPM공정표는 주기적으로 정확하게 실적관리되어야 한다. 즉 네트워크상 Activity의 실제 착수일과 실제 종료일이 정확하게 기록되어야 한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작업일보에도 Activity별 작업현황을 정확히 기록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네트워크에는 빠진 작업들과 잘못된 연결관계가 수두룩하고, 아예 네트워크 실적관리를 하지 않거나, 작업일보에 Activity별 작업현황을 기록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현장에서 공정관리를 하지 않느냐? 그렇지 않다. 워드, 엑셀, 또는 파워포인트로 별도의 상세 공정표를 만들어 회의자료에 열심히 첨부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상세 공정표가 CPM공정표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한마디로 CPM공정관리는 계약서에 있으니 흉내만 낼 뿐, 실제는 CPM공정관리와 관계없는, 법정에서 받아들이지 않는 별종의 공정관리만 하는 것이다. 물론 CPM공정관리를 제대로 하는 현장도 있을 것이다.

CPM공정관리는 공정관리 프로그램을 필요로 한다. 현재 대부분의 공정관리 프로그램은 PDM기법 기반이다. PDM기법 이전에는 시각적 표현이 우수한 ADM기법이 대세였다. ADM기법은 작업 간 논리가 Finish-to-Start(FS)에 국한되어 있고, 실적 표현이 잘 안 된다. 그래서 계획용으로 적합하다. 그런데 PDM기법은 작업 간 중복관계 표현이 가능하고 실적 표현도 자유롭다. 이것이 PDM기법이 ADM기법을 제압하고 독주하는 이유다.

PDM공정표는 바차트공정표에 논리를 추가한 형식이다. PDM공정표에서 작업 간 논리를 숨기면 바차트공정표와 똑같다. 덕분에 Activity수가 많아지면 작업 간 논리연결이 쉽지 않고, 전체 공정 흐름 파악도 어렵다. 혹자는 PDM기법이 공정관리를 바차트로 퇴보시켰다며 개탄한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PDM기법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기법들이 제안되고 있다. LDM기법, RDM기법, BDM기법 등이다.

그런데 국내 일부 공공건설사업에서 공정관리기법 제한이 계속되고 있다. 입찰안내서(RFP)에 ADM기법과 PDM기법만 명시하는 것이다. 시대를 읽지 못한 착오다. 물론 담당자가 새로운 공정관리기법들에 대해 모를 수 있다. 그렇다면 CPM공정관리만 명시하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열어놓으면 된다.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경쟁에 맡겨 놓으면 되는 것이다.

더욱 황당한 것은 공정관리 프로그램을 지정하는 것이다. 대부분 프리마베라 또는 MS-Project이다. 프리마베라와 MS-Project는 PDM기법 기반의 외국 민간기업 상용제품이다. 특정 민간기업에 대한 특혜이고, 명백한 불법이다. 국내에서 개발된 공정관리 프로그램들인 ADM/PDM기법 기반의 Neo-Plan과 EZ-PERT, BDM기법 기반의 비라이너(Beeliner)도 있다. 이들에게도 공정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

CPM공정관리를 일정/비용/자재 통합관리로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있다. 통합은 일정관리가 제대로 된 다음의 문제다. 일정관리도 제대로 못하는 어린아이에게 내역과 자재라는 무거운 짐을 더 얹어, 공정관리 본질인 일정관리마저 위태롭게 해선 안 된다. 간혹 공정관리 잘하자고 하면, “공정관리 열심히 하는데요”라며 항변하기도 한다. 그런데 대부분 제대로 된 CPM공정관리가 아니라, 법정에서 받아들이지 않는 별종의 공정관리에만 열심일 뿐이다.

역사 속에 수많은 신기술들이 있었다. 그것은 변화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조금씩 부정당하기 시작한다. 과거를 딛고 미래로 도약하기 위해서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 공정관리도 변해야 한다. 변해야 살아남고 진화하는 것이다.

국내 공정관리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그런데 공기관련 분쟁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CPM공정관리를 해야만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이제 공공건설사업에서부터 시대착오적이며 불법적인 관행을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Top에서부터 CPM공정관리에 적극적이어야 한다. 법정에서 받아들이느냐 여부를 떠나, 이제 별종의 공정관리는 접고, 제대로 된 CPM공정관리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게 건설선진국의 모습이다.

 

김선규(강원대학교 건축토목환경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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