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7개 부처는 지난 9일 청와대에서 ‘공정경제 성과 보고회의’를 진행했다. 이날 회의에는 ‘내 삶 속의 공정경제’라는 슬로건이 걸렸다. 국민이 일상에서 공정경제의 성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정책역량을 집중하겠다고 정부는 설명했다.
특히 공정경제의 대표과제로 공공기관을 먼저 지목했다는 점에서 이날 회의의 의미가 더욱 깊게 다가온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공공기관은 공정경제 실현의 마중물로서 민간기업 불공정 거래를 줄이려 노력해야 할 책임이 있다. 국민 삶과 밀접한 공공기관부터 공정경제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의식은 건설산업에 더욱 절실하다. 공정경제를 가로막는 ‘갑질’은 건설산업 주체별로 발생할 수 있지만, 특히 발주기관에서 발생한 갑질은 구조적인 문제로 자리 잡고 갑질을 확대 생산한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 크다. 원도급사인 종합건설사에서 하도급사인 전문건설사로 이어지고 다시 건설장비나 인력 등으로 전달된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고자 최상위 단계에 있는 공공기관의 갑질부터 방지하겠다고 나선 것은 제대로 방향을 잡았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정부가 그동안 건설업계가 호소했던 불공정계약 관행이나 발주기관의 갑질 행태를 자세하게 열거했다는 점도 향후 이런 행태들에 제동을 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들게 한다.
아쉬운 점은 7개 부처가 청와대에 모여 거창하게 내놓은 대책의 실행방법이 ‘공공기관의 자율적인 거래관행 개선을 유도한다’라는 정도에 그친 점이다. ‘용두사미’라는 사자성어가 머릿속에 스쳤다. 민간기업에 철퇴를 내리던 정부가 공공기관에는 가이드라인 수준의 자율적 개선을 주문하는 걸 보니 정부와 공공기관의 관계가 결국 ‘가재는 게 편’인 것인지 착잡함도 느껴진다.
과거 공정위의 지적에도 개선사항을 수용하지 않고 소송을 내고, 교묘히 피해 갈 수 있는 또 다른 갑질이나 불공정 계약을 개발(?)했던 공공기관의 행태를 돌이켜보면 자율적인 개선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민간기업들이 느끼는 공공기관 갑질에 대한 체감도에 정부의 공감은 아직 한참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도 보인다.
오늘(15일) 국회에서는 여당과 정부, 발주기관, 건설업계가 함께 모여 ‘공공건설 분야 상생협력 방안’ 선언식을 한다. 일한 만큼 주고, 받은 만큼 일하는 선순환 시스템을 정착시키겠다는 뜻에서 건설산업 주체들이 함께했다.
뜻깊은 자리다. 그런데 이런 선언식을 해야 하는 이유를 곱씹어보면 지금 건설산업에서는 선순환이 아니라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공사비를 제대로 받지 못한 원도급사는 하도급사에 고통 분담을 요구한다. 발주기관이 강요한 불공정계약을 하도급사와의 계약에 ‘벤치마킹’한다. 공사비가 부족한 하도급사는 값싼 불법체류 외국인력을 쓰고, 노조는 노조원을 쓰라고 현장에서 실력행사에 들어간다. 하도급사가 장비대금이나 임금을 떼먹고 달아나면 장비업체 등은 원도급사 앞에 와서 시위를 벌인다. 아귀다툼이다. 그리고 악순환이다.
악순환을 어디서 끊어내야 할까. 대통령의 말처럼 공공기관부터 공정경제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오늘 선언식이 시작이 되길 기대한다.
김정석 정경부장 j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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