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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양균(69) 전 참여정부 정책실장은 2007년 학력 위조 파문의 주인공 신정아씨와 스캔들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기획예산처 장ㆍ차관을 지낸 정통 경제관료로 더 명성이 높다. 그가 쓴 <경제철학의 전환>은 한국 경제에 대한 냉철한 진단과 처방을 담은 명저다. 성장률 둔화, 경기 부진, 고용의 질과 분배의 악화, 수출 감소 등 확산되는 위기를 재정으로 진화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최근 경제 정책을 보면서 그의 책에 손이 갔다.
변 전 실장은 ‘케인스적 수요’에서 ‘슘페터적인 공급’으로 정책 전환을 설파한다. 불황 탈출을 위한 경제정책의 근본 철학은 크게 케인스주의와 슘페터주의로 나뉜다.
‘뉴딜정책’의 이론적 기반인 케인스주의는 1930년대 대공황 이래 자본주의 국가의 기본철학으로 채택됐다. 케인스는 불황의 원인은 수요 부족이라고 봤다. 따라서 단기 재정정책이나 금융정책을 총동원해 총수요 관리와 완전고용을 이뤄야 한다는 입장이다. 단기 정책 효과가 분명하고, 정책의 내용ㆍ효과를 숫자로 표시할 수 있어 관료와 정치인들이 좋아한다.
슘페터의 처방은 달랐다. 수요 포화상태의 상품ㆍ서비스를 대체할 새로운 상품ㆍ서비스를 창출해야 한다고 봤다. 그래서 혁신이 필요하고, 혁신이야말로 기업가의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불황기에 금리를 낮추는 것에 대해선 ‘정치적 쇼’라고 비판한다. 다만, 슘페터주의는 단기 정책성과를 쉽게 입증하기 어렵고, 구체적인 정책수단을 제시하지 못해 경제정책으로 매력이 덜하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은 ‘근로자 소득 증가→소비 증가→투자 증가→성장률 증가’의 선순환구조로, 이론적 기반은 유효수요 창출을 중시하는 케인스주의다. 싱가포르가 1980년대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경제구조까지 선진국형으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재정ㆍ금융정책으로 근로자 소득을 끌어올리는데 한계가 있고, 설령 소득이 늘어도 소비 증가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게 문제다. 40개월 연속 월간 최저 출생아수 기록을 갈아치울만큼 우리 경제의 미래를 어둡게 보는 이들이 많다.
한국 경제는 경기순환상 일시적 불황이 아니다. 김영삼 정부 때 평균 6.8%의 장기성장률을 기록한 이후 김대중(5.1%), 노무현(4.4%), 이명박(3.4%), 박근혜(2%대) 정부를 거치면서 성장률은 계속 하락세다. 성숙단계로 접어든 한국경제에 시급한 것은 슘페터의 창의와 혁신이다. 이를 위해선 노동과 금융시장의 유연성을 확대하고, 기업 간 경쟁을 활성화해야 한다. 혁신 속도를 높여야 글로벌 경쟁을 뚫고 생존이 가능하다.
지금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따지는 시대다. 생산성 혁명 없이는 가격과 품질, 성능을 꼼꼼히 따지는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 수 없다. 이제는 정부가 정책을 펴서 직접 자원을 배분하고 지시하는 시대가 아니다. 경제주체가 기업가적 혁신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보장해주는 쪽에 집중해야 한다.
건설산업도 케인스적 수요(정부 발주 확대)에 기대는 천수답 경영을 벗고, 창의ㆍ혁신으로 신상품을 공급하는 슘페터주의로 대전환이 필요하다. ‘퍼펙트스톰(perfect stormㆍ여러 악재가 한꺼번에 터지는 초대형 경제 위기)’에 대한 경고음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김태형기자 k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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