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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해봐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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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1-01 07:00:10   폰트크기 변경      

김치를 담근 지 3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많은 양의 김치를 담그는 것은 어렵다. 어떤 때는 김치가 무르기도 하고, 짜거나 싱거울 때도 있다. 어떤 때는 배추 속에 양념을 고루 채우지 못했는지 먹을 때마다 김치 맛이 달랐던 적도 있다. 배추를 절이고 씻고 양념을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어도 김장을 해야만 월동 준비를 한 것 같아 마음이 편하다.

김치를 담글 때 양념하는 것도 힘들지만 절이고 씻는 일이 더 힘들다. 절임배추를 사서 하면 편하기는 한데 김장김치의 시원한 맛이 없다. 내가 배추 절이고 씻는 것이 힘들다고 하자 웬일인지 남편이 자청해서 도와 준다고 한다. 그동안 무채를 썰거나 배추 속을 넣는 것은 도와 주었어도 배추를 절이는 것은 한 번도 도와 준 적이 없었다. 올해는 편하게 김치를 담글 수 있겠다고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다.

분명 토요일에 김장을 할 것이라고 미리 알려 주었건만 금요일 오후에 내일 골프 약속이 있다며 일요일에 김장을 하자고 한다. 놀아 주는 친구가 있고 찾는 사람이 있을 때가 좋은 때라는데 이해하기로 했다. 집을 나서는 남편에게 늦어도 4시까지는 오라고 당부를 했다. 대답은 찰떡같이 하고 나갔는데 4시는커녕 6시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배추 절이는 일은 내 몫이 되고 말았다.

일요일 아침 남편이 알아서 무를 썰겠다며 채칼을 달라고 한다. 배추 씻는 일도 양념을 버무리는 일도 군말 없이 척척 한다. 남이 하는 것을 볼 때는 쉬워 보였는데 종일 쪼그리고 앉아서 하는 일이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우리도 김치 사먹을까?” 밖에서 무얼 사먹는 것을 싫어하는 남편이 뜬금없는 소릴 한다. 성격이 팔자를 만든다더니 내가 그 짝이다. 쉽고 편한 방법이 있는데도 굳이 미련을 떤다. 요즘은 김장을 하지 않는 집도 많다. 한다고 해도 몇 포기 하지 않는다. 예전의 엄마들은 100포기 200포기를 어떻게 했나 모르겠다.

새댁 시절 살던 아파트에서는 이웃들이 서로 김장을 도와 주곤 했었다. 김장하는 날 먹어야 하는 것이라며 양념한 김치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얼큰하게 끓인 동태찌개를 나눠 먹었고, 돌아갈 때는 겉절이 한 보시기씩 들려서 보냈다. 이제 도시에서는 이런 품앗이 풍경도, 재래시장 한 귀퉁이에 배추를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팔던 김장시장도 사라졌다.

김치 담그기 같은 무형의 유산은 어렸을 때부터 보고 듣고 체험을 해야 그 명맥이 이어질 텐데. 공장김치의 일률적인 맛이 아닌 그 집안만의 독특한 김치 맛은 손맛의 전수일 터인데 김장을 하는 집이 줄어들수록 다양한 김치 맛도 함께 사라지고 있다.

 

권혜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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