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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조병옥의 100년 전 당부와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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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1-15 07:00:10   폰트크기 변경      
"헌신, 봉사, 희생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실천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
   

  100년 전 자료를 읽다 보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의미 있는 자료들을 접하는 경우가 많다. 내년 2월 말 출간을 목표로 1920년 옥중 순국한 유관순 열사의 시신을 인수해 장사 지낸 지네트 월터(1885-1977) 이화학당 5대 학당장의 자서전을 번역하는 중에도 그런 경우를 만났다.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대학 박사과정 막바지에 쓴 유석 조병옥(1894∼1960)박사의 영문편지 전문이 자서전에 수록돼 있었다.

1955년 이승만 당시 대통령과 결별하고 신익희 등과 함께 ‘원조 민주당’을 창당했던 조병옥의 나라 사랑 정신이 잘 드러나 있어 편지를 번역하는 순간순간이 감동적이었다. ‘요즘 민주당’에도 타산지석이 되고 국론 분열이 심한 우리 사회에 경종이 될 것도 같았다.

이 편지를 자신의 자서전에 게재한 지네트 월터는 3ㆍ1운동 후 잠시 학당장을 하다가 앨리스 아펜젤러(감리교 첫 선교사 아펜젤러의 딸)에게 학당장을 물려주고 안식년 휴가를 받아 1923년과 1924년 뉴욕의 컬럼비아대학에서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조병옥도 박사 과정을 마치고 1925년 귀국했다.

계속되는 편지에서 조병옥은 지네트 월터를 고귀한 분(noble soul)으로 표현하며 젊음을 희생하고 가족을 뒤로한 채, 개인의 야망과 명예도 버린 채 먼 나라 한국에서 생소한 사람들 가운데 서서 봉사의 삶을 살아오고 있다고 찬사를 올렸다. 특히 지네트 월터의 한국의 대의(cause)에 대한 사랑과 헌신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시하는 것이야말로 아주 적절한 일이라고 밝혔다. 이런 헌사와 함께 조병옥은 유학생 후배들에게 자계(自戒)하자는 내용도 덧붙이고 있는데 그 내용이 21세기 한국인에게 당부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우리 유학생들이 자신에 대한 성찰을 먼저 하자는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국과 유럽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학생들에 대해 ‘돈과 명예만 관심 갖는다’는 여론의 비판에 대해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극단적으로 되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그 같은 비난을 피하고 우리 자신을 국가와 민족을 위하도록 만드는 데 ‘헌신(devotion), 봉사(sevice), 희생(sacrifice)의 삶을 사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조병옥은 “누가 명예와 부를 싫어하겠느냐?”며 “두 가지는 인간을 행동하도록 하는 필요한 동기이지만 우리의 이상적인 삶을 대치하지는 못하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31세의 젊은이가 갖고 있었던 가치관이 대단하게 느껴질 뿐이다. 그는 이런 가치관에 따라 1929년 광주학생운동 탄압을 규탄하는 민중대회를 열어 배후 조종 혐의로 3년 형을 선고받았고 1937년에는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또 2년을 복역하였다.

비록 지네트 월터에게 보내는 사신 형태였지만 이런 가치관을 가진 조병옥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창당한 원조 민주당의 창당 정신이 같은 민주당 이름을 쓰는 현재의 민주당에 면면히 계승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무조건 두둔하다 당 대표가 사과할 수밖에 없었던 조국 사태를 보면 조병옥의 당부가 100년 후를 내다본 것처럼 와 닿는다. 그는 SNS를 통해 세상을 훈계하며 명예를 얻었으나 언행이 달랐고, 그 부인은 구속될 정도로 돈에 관심이 많았음이 백일하게 드러나고 있다. 헌신, 봉사, 희생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실천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산 인간이 주도하는 개혁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기는 연목구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조병옥은 ‘극단적으로 되는 것은 불행(unfortunate to extreme)’이라고 말했다. 돈이나 명예, 권력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를 얻으면 또 다른 하나를 더 가지려 하고 마침내 모든 것을 차지하려는 욕심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 돈, 명예, 권력은 인간의 행동에 동기부여를 하는 데 까지만 써야지 그것들이 이상(ideal)이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100년 전 조병옥은 동료 후배 유학생들에게 당부했다. “헌신, 봉사, 희생의 삶을 사는 것”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고.

조병옥으로부터 헌사의 편지를 받은 지네트 월터는 1911년 내한해 1926년까지 이화학당에서 헌신적으로 봉사한 후 가정 사정으로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귀국 후에도 그녀는 캔자스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가정방문교사로 일하며 주로 문제학생과 불우한 가정환경의 학생을 돌보고 선도하는 업무를 1954년 은퇴할 때까지 계속하다 1977년에 생을 마쳤다.

임연철(미국 드루대 플로렌스 A. 벨 기금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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