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좌우 경로석 여섯 자리가 텅 비어 있어 마음 편히 앉았다. 뒤미처 아주 건강한 아가씨가 올라탔다. 맞은편에 앉은 그녀의 옷차림이 눈에 익었다. 조금 전 대합실에서 나보다 앞서 친구와 재잘대며 걸어가던 아가씨였다.
거의 두 좌석을 혼자 차지할 만큼 엄청난 거구다. 다이어트를 좀 해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든다. 얼핏 보아도 이목구비는 비록 살에 파묻혀 있지만, 오목조목하니 귀여운 얼굴이다.
다음 역에서 내 옆에 두 사람이 앉는다. 열차가 출발하기 직전에 모녀인 듯한 두 사람이 급하게 타더니 빈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경로석에 예의 아가씨가 혼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엄마는 딸더러, 딸은 엄마더러 서로 앉으라고 가벼운 실랑이를 벌인다.
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던 아가씨가 스마트폰으로 파고들던 눈을 들어 모녀를 올려다보더니 무연하게 자세를 약간 비튼다. 그러자 도저히 나오지 않을 것 같던, 아가씨 엉덩이에 가려져 있던 자리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내민다. 모녀가 나란히 앉는다. 세 사람의 앉은 모습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내가 보기에 꽉 끼이는 그림도 아니다.
비대한 사람도 약간 넘치기는 하지만 한 자리를 차지하고, 깡마른 사람이라도 한 자리에 두 명 앉기는 어렵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결국 한 사람 몫을 하는 것이다. 능력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제각기 할 몫이 따로 있다. 다만, 그 역할이 조금 더 크거나 작을 뿐이다. 숲에도 키 큰 나무가 있는 반면에, 작은 나무가 그 사이사이 공간을 채우고 바닥에는 풀과 교목이 있어야 어우러지고 숲을 이루듯이.
요즘 불거지고 있는 갑과 을의 문제는 대부분 역할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어쩌면 정해진 자리를 조금 더 차지하려는 다툼, 자리를 넓게 차지했다고 어깨에 힘을 주는 데서 일어난다. 더불어 사는 지혜와 배려가 필요하다.
열심히 스마트폰을 만지는 아가씨의 손놀림이 비상하다. 조금 전 헤어진 친구와 못다한 말이 많은 게다. 덩치가 있다고 기죽지 말고, 친구와 즐겁게 수다도 떨고, 밝고 환하게 살기를 오지랖 넓은 내가 마음 속으로 응원한다. 그리고 조금, 정말 조금만 몸무게를 줄이면 얼굴 살에 숨어 있는 예쁜 보석들이 하나씩 되살아 나올 거라고 덧붙여 준다.
조이섭(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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