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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다가오는 봄에 결혼을 한다. 청첩장 모임에서 이런저런 축하의 이야기를 나누던 중 “신혼집은 어디에 구했어?”라는 질문이 나왔다. 아직 집을 못 구했다는 예비신부는 “부부의 출퇴근 거리를 생각하면 마포구가 딱인데 대출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해보면 일산으로 가야할 것 같다”며 후보군 몇 곳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까지였으면 참 좋았을 텐데. 다른 친구가 자가인지 전세인지를 물어보면서부터 토론의 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사야 한다’,‘조정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소소한 의견 교환에서부터 출발한 논쟁은 GTX노선과 학군, 분양 정보 및 청약 경쟁률, 재건축, 리모델링을 거쳐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평가로 이어졌다. 급기야는 자녀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사대문 밖으로 이사 가지 말고 버티라고 했다는 다산 정약용의 말까지 회자됐다. 갈수록 뜨거워지는 토론 열기에 예비신부의 결혼 이야기는 어느새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다.
부동산은 이제 단순 관심의 영역을 넘어 갈등의 불씨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최근 인터넷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부동산계급표’가 떠돌며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시세를 기준으로 자치구를 카스트제도처럼 줄 세워 등급화시킨 것이다. 계급표의 하단부에는 노비ㆍ가축ㆍ재활용으로 명시하는 등 노골적인 지역 폄하 내용이 담겨 있어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들었다.
부동산은 세대 갈등으로도 번졌다. 유주택자인 부모 세대와 무주택자인 자녀 세대가 부동산을 주제로 대화를 하면 십중팔구는 말다툼으로 이어진다. 청약제도, 보유세 인상 등 입장차가 명확한 문제들이 많아 충돌을 피해가기 어렵다. 어느새 부동산 이야기는 종교, 정치와 함께 ‘명절날 하지말아야 할 금기어’가 돼버렸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부동산 시장은 안정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총선이 다가오자 정치권에서는 너나할 것 없이 부동산 관련 발언을 하며 시장의 불안정성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여당은 시장이 불안한 조짐을 보이면 곧장 추가적인 부동산 규제 카드를 내놓겠다는 입장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국민공유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국토보유세’ 등 파격적인 발언을 내놓은 바 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주택담보대출 기준 완화, 분양가상한제 폐지, 재개발ㆍ재건축 규제 완화 등 정부정책과 정반대의 공약을 쏟아내는 중이다.
실수요자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모임이 끝나고 걱정만 한아름 안고 가는 예비신부의 쓸쓸한 뒷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김희용기자 h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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