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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경제 발전은 건설산업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1970~1980년대 중동건설 붐의 주역인 건설기술자들은 경제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 왔다. 최근 해외건설 수주실적이 급감한 이유는 빠듯한 공기와 저가수주의 한계 등이다. 이에 투자개발형(PPP), PM, CM등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정부의 정책 변화가 시급한 실정이다. 이러한 분야에 대한 경쟁력은 건설기술자들의 선진화된 역량이 필수 조건이기도 하다.
최근 국토교통부는 공동도급사 대표자에게 모든 벌점을 부과하는 등 부실벌점 제도를 강화하는 내용의 건설기술진흥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그러나 이러한 단편적인 처벌강화위주의 제도는 건설기술자들의 자긍심을 떨어뜨리 뿐이다. 또 안전사고와 부실공사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절차적, 법률적인 부분에서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공동수급대표자에 대한 부실벌점 부과는 분쟁만 양산할 따름이다. 공동수급체(공동이행 방식)의 법적지위는 출자비율에 따라 이익 또는 손실을 배당하는 형식의 연대책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 공동수급체 대표자라 할지라도 지분율이 30~40%대인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공동수급 참여업체(B사)와 담당기술자(B사)의 부실측정에 따른 부실벌점을 총괄기술자(A사)와 대표자(A사)에게 벌점을 부과하는 것은 헌법에 명시된 ‘책임주의’원칙에 어긋난다. 공동수급체는 지분율에 의한 평등한 권리주체로, 대표자가 통제와 관리를 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책임소재에 따른 많은 분쟁과 소송이 예상된다.
둘째, 건설기술자 및 회사의 양벌규정은 과잉 처벌주의다. 건설기술진흥법상 양벌규정은 위반행위자 및 법인을 처벌함으로서 형벌의 실효성을 높이는데 입법 취지가 있다. 그러나 이 경우도 2007년 헌법재판소가 “과실유무에 상관없이 양벌규정을 적용하여 처벌하는 것은 ‘책임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취지의 위헌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에 직원의 위반행위에 대해 명백히 방지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경우에만 제한적인 양벌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건설사업자 및 건설기술용역업사업자는 임직원에 대해 검측, 품질관리, 안전관리 등 부실벌점 예방교육을 중복적으로 충분히 실시하고 있으므로, 양벌규정은 제한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셋째, 평균방식에서 합산방식으로 변경은 반발만 부를 뿐이다. 그 동안 벌점의 산정, 적용방법을 현장점검 수를 고려한 누계평균벌점 산정방식을 적용하여 대규모회사의 경우 평균벌점에 대한 관리가 가능했다. 이를 합산벌점방식으로 변경할 경우 많은 현장을 보유한 회사는 상당한 불이익이 예상되며, 측정기관 및 심위위원들과 많은 분쟁과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넷째, 벌점 부과 심의위원 구성에도 문제가 많다. 벌점 측정기관에서 책정한 벌점에 대해, 벌점 부과대상자가 제출하는 의견을 외부전문가를 포함한 5명 이상의 위원이 검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심사위원 구성이 대부분 벌점 부과 기관의 위원들과 외부 위원 1인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때문에 전문성이 부족한 심사위원들의 정성적인 판단에 의존할 수 밖에 없어 판단의 합리성에 의구심이 높았다. 건설기술진흥법 시행령에 의한 부실벌점부과는 법률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측정기관이 참여함으로서 객관적 심의도 보장되기 어렵다. 이러한 부실벌점부과는 형벌적 결과로, 명백한 피해결과에 따라 부과하도록 명시하고 있으나, 전문적인 법률검토 없이 이루어지고 있어 행정소송만 늘어날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건설기술진흥법 시행령의 일부 개정안은 건설주체들을 부실벌점(형벌) 강화로 다스리겠다는 의도다. 부실벌점부과가 행정소송으로 가면, 부당하다는 판결을 다수 받고 있는 게 현실다. 따라서 외부 전문기관 및 전문가에 의해 객관적이고 충분한 법률적 검토를 통해 시행하는 게 바람직하다.
끝으로 필자는 부실벌점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안전사고와 부실공사의 행위자(건설사업자)가 아닌 건설기술용역사업자는 발주청의 업무를 수행하는 ‘민간감독자’이다. 건설사업자와 다르게 안전관리비, 전담 안전분야 기술자배치 없이 책임을 묻는 정부의 정책을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건설기술진흥법의 당초 입법취지에 맞도록, 기술(자)우위 정책과 우수 건설기술자들에게 가점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전사고와 부실공사는 낮은 공사비, 부족한 공기, 능력이 떨어지는 건설기술자 등에 의한 악순환의 결과로 건설생산 시스템상 문제다. 건설산업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적정공사비와 적정공기 확보, 우수한 건설기술자들이 유입되는 선순환 시스템이 필수임을 명심하고, 건설산업의 주역인 건설기술인의 자긍심과 건설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제고하는 방향의 법 개정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이번에 입법예고된 개정안은 재고되어야 한다.
하한기 신한종합건축사사무소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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