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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아전인수(我田引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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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2-18 06:00:22   폰트크기 변경      

  술을 마시면 기분이 도도해지고 목청이 올라간다. 좌중에서 발언권 얻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술을 시켜 놓으면 안주가 없고, 안주가 나오면 술병이 빈다. 이쯤에서부터 귀찮은 일이 도발된다. 무르익는 좌중에서 빠지기 싫어 발가락 끝을 꼼지락거려 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슬그머니 궁둥이를 떼야 한다.

  남자 화장실 변기에 투명한 각얼음이 수북하게 담겨 있다. 배설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사이에 오줌발에 힘이 들어간다. 마치 소방관이 불을 끄듯이 방향까지 바꾸어가며 뒤척이는 각얼음을 조금이라도 더 녹이려고 용을 쓴다. 하지만, 소방용수가 바닥을 드러내는 바람에 종내 아쉬운 마음으로 바지 앞섶을 여민다.  화장실에서의 은밀한 작업을 숨기느라 “에헴” 헛기침 한 번 하고 다시 농밀한 대화에 녹아든다. 술자리에서의 배설은 한 번 개통하면, 마신 양보다 나오는 게 더 많다 싶을 만큼 연달아 나오기 시작한다. 어찌 나만 그럴까 보냐. 앞에서, 또 옆에서 교대로 자리를 뜬다.

  다시 내 차례다. 그 사이에 각얼음이 푹 꺼져 있다. 내 몫의 보물을 도둑맞은 기분이 든다. 이번에는 김이 물씬 나는 오줌발을 세워 한 군데만 집중적으로 공략한다. 하얀 변기 바닥에 검은 빛이 비친다. 자세히 보니, 바닥에 놓여 있던 사기 덮개가 깨어져 있다. 나의 세찬 공격에 항복한 두 동강 난 덮개가 각얼음 밑에서 분한 듯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아직 나에게 이런 힘이 남아 있다니. 거울에 비친 나에게 싱긋 웃음을 지어 보이며 부르르 진저리를 친다.

  이튿날 오후, 숙취에서 겨우 벗어나 우리 집 변기에 떨어지는 소변 줄기를 보니 가소롭기 짝이 없다. 어제는 어찌 된 일일까? 아마도 어느 변강쇠가 오래전 그 사기 덮개를 결딴냈을 것이다. 주인장은 뒤에 오는 손님들이 주눅 들까 봐 각얼음을 수북하게 덮어 숨겨 놓았을 것이다. 그의 속 깊은 배려를 알아차리기는커녕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물색없이 으스댄 꼴이라니. 어이구, 이 주책아!

 

조이섭(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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