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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건설기술진흥법시행령 일부개정안의 입법예고 내용을 두고 설계, 시공, 감리 등 건설산업계 전체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안전 확보를 위한 부실벌점 확대(강화)가 이슈인 것 같다. ‘모든 정책의 의도는 선하다’라는 말이 있다. 선의로 정책을 펴거나 최소한 선하게 보이는 명분은 확보하고 정책을 편다는 의미이다.
건설시설물의 부실공사 방지를 통한 사용자(국민)의 안전 확보. 이를 위해 책임질 사람에게 책임을 지게 하는 것.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되는 명분이 확실한 선한 정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설산업계가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는 그 강도가 너무 ‘갑자기 빡세졌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가 된다. 부실벌점의 강도에 대한 반대 의견은 이미 건설산업계에서 개진하고 있으니 필자는 다른 관점에서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부실벌점의 적용 대상에 관한 것이며, 부실벌점의 적용 대상이 발주자까지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제안이다.
현재 입법예고 중인 내용의 골자는 일을 하는 주체(설계사, 시공사, 감리사)에게 부실에 대한 강한 책임을 지우자는 것이다. 절반의 해법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 효과도 딱 절반만 또는 그 이하로 나타날 것이다. 일을 시키는 주체(발주자)의 책임에 대한 얘기가 빠져 있다. ‘물귀신 작전’을 써서 선한 의도를 가진 정책의 힘을 빼려는 의도가 아니다. 오히려 선한 정책이 온전한 효과를 보기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제안이다.
부실벌점의 적용 대상이 발주자로까지 확대되어야 하는 이유는 아주 명료하다. 첫째, 발주자는 건설공사의 ‘구경꾼’이 아니라 건설생산 과정에 개입하는 참여주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둘째, 건설공사의 결과(성공 또는 부실)는 일을 시키는 주체와 일을 하는 주체의 합작품이기 때문이다. 셋째, 건설공사의 각종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주체는 발주자이며, 따라서 그 결과에 더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리더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리더라면 성공의 열매만을 탐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부실)의 책임도 공유할 줄 알아야 한다. 또한 책임질 사람이 함께 책임지는 것이 문재인 정부가 가장 중요한 통치철학으로 삼고 있는 정의와 공정에 부합하는 것이다.
부실공사의 책임으로부터 발주자가 자유롭지 않다는 글이나 사례는 하도 많아서 일일이 다 언급을 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그래도 공공기관 중 하나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블로그(2013. 11. 21.) 글을 하나의 사례로 살펴보자. 해당 일자의 블로그 글에서는 부실공사와 하자에 대해 설명하면서 부실공사의 원인과 대책 10가지를 제안하고 있다. 이를 살펴보면 분명히 일을 하는 주체가 부실 공사의 원인 제공자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발주자도 자유롭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고 ‘발주자의 지위남용’을 부실공사의 원인 중 하나로 아예 대놓고 명시하고 있다. 부실공사의 원인 제공자 중 하나가 발주자라면 책임을 분담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어떤 시스템으로 부실에 대한 책임을 발주자가 ‘공유’할 수 있을지는 이제 같이 고민해 보자. 그간 부실공사의 책임을 건설산업계에만 부과하던 패러다임에서 탈피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일단 공공발주자를 대상으로 시작하자. 기관 평가나 경영 평가를 활용하거나 ‘발주자역량기본법’을 제정하여 발주자의 권한에 대칭되는 책임을 부과하는 방법을 같이 한번 찾아보자.
필자가 공공발주자에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 주기 바라는 마음이다. 책임의 비대칭성을 바로잡는 것이 건설산업 혁신의 중요한 전제조건 중 하나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의 돈을 집행하고, 안전한 건설시설물을 국민에게 제공하는 최종 책임은 설계사, 시공사, 감리사가 아니라 공공 발주자에게 있다. 책임이 머물러야 할 곳에 책임을 머무르게 하는 것. 그것이 책임의 비대칭성을 바로잡는 길이다.
그간 우리는 건설산업을 혁신시키기 위한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을 보아왔다. 우리 건설산업의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지속되어야 하는 노력이다. 그 과정에서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건설산업계에 의무와 책임을 가중시키는 것만으로 건설산업이 혁신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부실한 열매가 맺혔다고 가지를 자르거나 가지에만 농약을 친다고 풍성한 열매가 맺히지는 않는다. 부실한 뿌리와 줄기를 해결하지 않으면 그 결과는 동일하거나 더욱 나빠질 것이다. 지혜로운 농부로서의 정부의 역할을 기대하며, 부실벌점을 어디까지 공유하게 하는가가 그 시금석이 될 수 있다.
김한수(세종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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