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3일부터 서울 25개구와 과천, 성남 분당, 광명, 하남, 대구 수성, 세종 등 전국 31곳의 투기과열지구에서 시세 9억원 넘는 주택을 살 때는 자금조달계획서와 예금잔액증명서, 소득금액증명원 등 객관적인 증빙자료를 정부에 제출해야 한다. 지난 1월 서울지역 아파트 중위가격이 9억원을 넘겼다. 즉 서울과 수도권 인기지역 신축 아파트를 사려면 앞으로는 최대 15종의 증빙서류를 갖춰야 한다는 이야기다. 증빙자료를 내지 않으면 5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주택거래 허가제와 진배없다. 지난 1월 초 관련법 개정안이 입법예고됐을 때 너무 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됐으나 전혀 반영이 안 된 채 시행되는 것이다.
앞으로는 자금조달계획서 신고항목이 더욱 구체화된다. 증여나 상속을 받은 경우 기존에는 단순히 증여ㆍ상속액만 기재하게 했으나 바뀌는 계획서는 증여나 상속을 받았다면 부부나 직계존비속 등 누구로부터 받았는지도 구체적으로 밝히도록 했다. 또 부부간 증여는 6억원까지 증여세를 면제받을 수 있으나 부모 등 직계존비속의 증여는 5000만원까지만 면제 대상이다. 자금조달신고서만 보면 증여세 납부 대상인지 아닌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계획서에 주택 대금을 어떻게 지급할지도 계좌이체, 보증금ㆍ대출 승계, 현금 지급 등으로 나눠 소상히 밝혀야 한다. 수도권 지역 웬만한 아파트 구입자들은 재산 내역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셈이다.
불법 증여와 투기를 잡으려는 정부의 노력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편법거래 근절을 이유로 개인 재산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겠다는 것은 행정권 남용이다. 더구나 법률도 아닌 시행령을 근거로 자금 출처 증빙을 요구하는 것은 위헌 소지마저 제기될 수 있다. 이번 조치에 실수요자들은 크게 불만이다. 그간 예ㆍ적금을 통해 십수 년간 모은 자금을 일일이 서류를 통해 증명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금 소명에 따른 불편을 우려해 실수요자들이 주택 구입을 포기하면 거래 절벽을 넘어 부동산시장 자체가 마비될 수 있다. 집값을 잡겠다고 정부가 가격ㆍ수요를 통제하는 반시장 정책에 매달리면 역효과만 낳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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