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이 지난 만석거에 봄소리가 요란하다. 물가에 서 있는 무궁화 가지 끝에서는 참새 몇 마리가 놀잇감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엔진을 단 것처럼 물결 반대 방향으로 쭉 밀고 가던 청둥오리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와 친구와 꼬록꼬록 노래를 부른다. 마른 풀숲에서는 동그란 열매를 입에 문 까치가 찰차르륵 까치댄스를 추고 있다.
정조 때 만들어진 만석거(萬石渠)는 당시의 최신식 수문과 수갑이 갖추어진 관개시설이다. 이 저수지가 만들어진 후 쌀의 생산이 일만석이나 늘어 만석거라 불렀다고 한다. 2017년에는 세계관개시설물 유산으로 등재되기까지 했다.
나에게도 만석거는 큰 의미가 있는 곳이다. 어릴 시절, 아버지의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 신나게 달리던 둑길이 바로 여기였다. 그 한쪽 편에서는 초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 영이의 집이 담장 안까지 훤히 보이기도 했다. 2000년대의 만석거는 한때 초고도 비만으로 고혈압과 고혈당의 위험에 있던 나의 체중과 마음을 가볍게 해준 고마운 친구다.
결혼 후 몇 년 동안 지방도시에 살다 와보니 만석거 주변이 근사한 공연무대도 있고 소나무와 갈대, 단풍나무와 벚나무가 어우러진 만석공원이 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쳐나고 몸이 불편한 노인들이 기꺼이 햇빛을 받으러 나와 연꽃과 음악분수의 경쾌한 춤을 감상할 수도 있게 되었다.
꽃눈이 굵어진 벚나무 가지를 바라보며 걷다보니 인공으로 만든 작은 도랑에서 만석거로 흐르는 물소리가 경쾌하다. 조금 더 가니 조선시대 관청이었던 영화정이 푸른빛 짙어지는 소나무 옆에 잠잠히 서 있다. 건너편에는 버드나무 사이로 지붕과 벽이 우아한 곡선 모양인 배드민턴 경기장이 눈에 들어온다. 1.3㎞의 둘레길에서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갤러리 안의 작품을 보며 시간 위를 걷는 것 같다.
정조대왕이 지금 이 모습을 본다면 화성천도의 꿈은 이루지 못했어도 성 밖 백성들이 누리는 만석거의 봄을 함께 느끼며 흐뭇해하지 않을까.
조현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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