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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건설분쟁과 이혼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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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3-23 06:00:20   폰트크기 변경      

 

   

  서울중앙지방법원에는 전문재판부가 여럿 있다. 49개의 민사합의부 중 건설, 의료, 언론, 노동, 국제거래, 저작권 등의 전문재판부가 있어서 관련 사건들을 집중적으로 처리한다. 그중 건설전문재판부는 11개(재개발전문재판부 2개 포함)로 숫자가 가장 많은데 이는 건설소송이 많을 뿐 아니라, 건설재판은 심리가 힘들어서 건설재판부의 부담을 줄여주는 의미도 있다. 법관들이 전문재판부 맡는 것을 선호하는 편인데, 유독 건설전문재판부에 대하여는 부담감을 느껴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업무량 처리기준에서도 건설사건을 일반 사건의 2배로 인정하며, 별명이 ‘노가다 재판부’라고 할 정도니까 그 부담을 알 수 있다.

  필자는 건설전문재판부 재판장으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3년6개월, 서울고등법원에서 2년을 지냈다. 아마도 우리 법원에서 최장수 건설전문재판장 기록을 가진 듯한데, 이를 30년 넘는 법관 생활에서 가장 큰 보람으로 느끼고 있다. 이런 경력 때문인지 사법연수원, 변호사연수회 등에서 건설전문 법관과 변호사들에게 강의할 기회가 많았는데, 강의 시작할 때 꼭 던지는 질문이 있다. “건설소송은 어떤 유형의 사건과 가장 비슷할까요?”

  건설소송을 일반 민사소송과 비교할 때 6가지 특징이 있다고 생각한다. ①사안의 복잡성 ②심리의 장기화 ③관계자의 전문성 필요 ④입증의 어려움 ⑤당사자 상호 책임의 연관성 ⑥인적 신뢰관계 등이 그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건설소송의 심리는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국제거래사건은 ③의 전문성이 필요하고 ④의 입증 어려움이 있을 때가 있고, 의료사건은 ①내지 ③은 인정되지만 ④ ⑤ ⑥은 인정되지 않는다. 저작권사건은 ① ③은 해당되지만, 나머지 항목과는 별 관계가 없다. 노동사건과 언론사건은 법리적인 쟁점이 중요한 반면에 사실관계는 간단한 경우가 많아서 건설사건과는 사뭇 다르다.

  위 질문에 대한 해답은 엉뚱한 듯하지만 ‘이혼재판’이다. 이혼재판은 위의 ① ④ ⑤ ⑥의 특징을 공유한다. 구체적으로 보면, 건설소송과 이혼소송은 ①사안이 복잡하고, ④그 증명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매매사건은 수천 억짜리 매매라 하더라도 계약을 체결하기가 어렵지, 일단 계약이 체결되면 이행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단기간에 끝나는 단발 계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설공사계약은 대부분 체결 이후 이행과정이 쉽지 않다. 공사기간이 수 개월 이상 걸리고, 공정이 수십 가지여서 다수의 전문공사업자들이 관여하며, 설계부터 각종 공사, 원자재 등 문제가 어디에서 생긴 것인지 판단이 어렵다. 사안이 복잡한 만큼 구체적 증명도 아주 어렵다. 종종 격렬하게 다투는 건설소송을 보면 마치 이혼사건의 심리를 하는 분위기가 날 때가 있다. 이혼소송에서 부부 사이의 내밀한 관계를 증거만으로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이혼소송에서 당사자들은 자기만 억울하다고 믿는 ‘인지 부조화’ 상태에 빠져 있어서 그 주장을 그대로 믿기 어렵고, 파탄 책임의 증명이 정말 어려운데 건설소송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또한 건설소송과 이혼소송은 ⑤당사자 상호 책임의 연관성이 높고 ⑥인적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시공과정에서 기성고, 공사변경 등 수시로 협의할 일이 생기는데, 당사자 사이에 신뢰관계가 있어야 원활하게 이루어진다. 또한 공사에서 당사자 상호간의 책임이 상당 부분 연관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공기가 연장되었을 때 ‘결정적인 연기 책임’이 어느 쪽에 있는지 판단하는데 미묘한 차이로 희비가 갈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혼 재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혼인 파탄에 일방적인 잘못만 있는 경우는 흔치 않고, 대개는 부부관계에서 상호 간에 작은 충돌과 감정들이 쌓여서 마침내 파탄에 이르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건설재판과 이혼재판은 깊은 신뢰로 출발한 인간관계가 분쟁을 거치며 미움과 환멸의 관계로 전락하여 서로 고통을 받게 된다는 점에서 인간적인 면이 큰 재판유형에 해당한다.

  건설소송 과정에서 재산적 손해보다도 상대방의 거짓 주장에 분노하며, 인간적 배신감에 고통받는 사람을 종종 보는데, 이는 건설분쟁에서 인간적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재산을 잃으면 적게 잃은 것이고, 사람을 잃으면 많이 잃은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이렇듯 건설분쟁을 겪으며 인간관계로 입는 상처는 정말 큰 것 같다. 따라서 건설분쟁에 관여하는 법관이나 변호사들도  재산 문제뿐 아니라 이러한 인간적 문제도 함께 살피면 어떨까. 사람에게서 받는 상처만큼 아픈 것은 없으니까 말이다. 건설소송도 이혼소송만큼이나 인간적으로 대하면 좋겠다.

 

윤재윤(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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