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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봄은 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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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3-25 06:00:20   폰트크기 변경      
   

  나는 코로나19에 취약한 기저질환자다. 뉴스를 보면, 60대가 되면 특별한 병이 없어도 기저질환자가 되는데 나는 당뇨병 25년차에 60대이니 꼼짝없다. 불안하기 짝이 없다. 조심한다. 가능하면 방콕이고, 마트도 잘 안 간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이미 일상이 되었다. 그나마 청계천변을 산책하는 것이 낙인데 이제는 그것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차제에 지난 10여 년 동안의 충격적인 경험을 되돌아보았다.

  한 십년쯤 전, 개인적으로 꽤 큰 충격을 받았던 장면이 있었다. 병원에서의 일이다. 그곳에서 ‘아버님’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나하고 상관없는 말인 줄 알았다. 나는 간호원이 누군가에게 ‘아버님’이라고 불렀지만 아무도 대꾸하지 않기에, 속으로 어떤 아버님께서 정신을 놓고 계시나 하며 눈을 감고 있었다. 조금 후에 알았다. 그 아버님이 나를 부르는 말이었다는 것을. 내가 대답을 하지 않으니까 간호사가 나의 이름을 불렀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졸지에 간호사의 아버님이 되었다. 그날 이후 병원에서나 음식점에서나 어디서나 종종 나를 아버님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씁쓸했다. 결코 기분 좋지 않았지만 화낼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렇게 아버님은 나의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며칠 전, 새로운 사건이 일어났다. 산책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맞은편에서 할머니, 며느리 혹은 딸, 손자 3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4~5살쯤 되는 개구쟁이 사내아이가 나를 보자 뭐가 좋은지 웃으며 내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아이엄마는 그런 아이를 부지런히 쫒아와 아이를 안으면서 “우리 왕자님, 그러면 안 돼요, 할아버지 힘들어요, 성가시게 하면 안 돼요”라고 아이를 말렸다. 허걱! 세상에, 나를 보고 할아버지라니? 세상에 이런 날벼락이 있나. 무슨 근거로 나를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거야, 저 아줌마가 증말! 기가 찼다. 순간 스트레스지수가 수직 상승했다. 그때 내 모습은 모자에 마스크까지 쓰고 있어 육안으로는 내가 아저씨인지, 할아버지인지, 청년인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나 혼자만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실제로 내 몸은 군살이 없고 배도 나오지 않았다. 실루엣은 청년 같다. 그럼에도 아이 엄마는 주저 없이 나를 할아버지로 인식했다. 어딜 봐서 내가?

  나를 더욱 할 말 없게 만든 일은 어제 일어났다.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이었다. 우리 부부와 새댁 그리고 돌이 갓 지난 정도의 아기가 유모차에 타고 있었다. 아기는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귀여웠다. 물론 그때도 나는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있어 내 얼굴은 거의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몇 초 후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아기가 손짓하며 “하부지, 하부지”라고 나를 불렀기 때문이다. 순간 빵 터졌다. 하하하. 얼굴을 다 가리고 있어도, 아기는 나를 할아버지로 부른 것이다. 아기의 순수한 눈에 그렇게 보였으니 이제 영락없이 할아버지가 되고 말았다. 이제 어디 가서 하소연 할 데도 없게 됐다.

  그렇게 ‘아버님’에서 ‘할아버지’가 되는 데 10여년이 걸렸다. 아버님이 될 때나 할아버지가 될 때나 나에게는 정말정말 진짜진짜 황당한 순간들이었다.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는 느낌이었다. 나를 아버님이라 부른 간호원, 나를 할아버지라고 말한 아기엄마. 두 사람 다 나름 나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말했을 것이고, 아기는 그냥 할아버지처럼 보였으니까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 그러니 모두에게 특별히 탓할 일은 아니다. 내가 할아버지라는 말에 민감한 것은 아직 손주를 보지 못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 일 이후 잠시 노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노인의 특징 중의 으뜸은 대체로 불평불만이 많아지는 것이다. 불평이 많아지니 화를 잘 낸다. 화를 잘 내니 생각이 좁아진다. 생각이 좁아지니 자신밖에 생각하지 못한다. 자신만 생각하니 싸움이 잦아진다. 싸움이 잦아지니 불평불만의 과정은 되풀이 된다. 결국 친구끼리도 싸우고, 후배에게는 외면당하고, 젊은 사람으로부터는 무시당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늙는다는 것은 슬픈 것이다.

노인 됨이 좋은 점도 있다. 노인이 배움을 계속하면 능력자가 된다. 인생의 문제도, 배움의 문제도, 문제 해결 등의 부분에서 젊을 때보다 지혜로워진다. 많은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세상에는 60청년도 있고, 20노인도 있다. 노인과 청년의 구별은 몸이 아니라 정신에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면 노인도 청년이고, 배움을 멈췄다면 청년도 노인이 된다. 노인과 청년의 구별은 이처럼 간단하다. 진짜 인생의 봄은 노인부터다. 이제부터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무엇이든 해봄이 어떨까? 봄이지 않은가, 봄!

김규철(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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