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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우리집 툇마루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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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6-03 06:00:16   폰트크기 변경      

  고향집를 고치면서 꼭 만들고 싶은 게 ‘툇마루’였다. 툇마루에 필이 꽂힌 건 한옥의 필수 부속시설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유제(이웃)에서 마실을 올 때 툇마루에 앉아 소통하던 장면들, 할머니가 떠도는 거지들에게 툇마루에서 개다리소반에 반찬 두어 가지로 끼니를 챙겨주던 모습들. 여러 모로 쓸모 있는 툇마루가 언젠가부터 농촌에서 사라진 것이다. 툇마루를 기어코 만든 까닭이 여기에 있었다.

  어제는 그 툇마루의 역할을 톡톡히 한 날로 기억될 듯싶다. 저수지에 쳐놓은 새우망을 건지니 겨우내 살이 제법 오른 새우들이 활개를 치고 있었다. 민물새우탕이 얼마나 개운하고 시원하고 깔끔한지, 맛보신 분들은 아시리라. 귀하여 보기조차 힘든, 1급수에만 산다는 새우. 큰 무를 숭덩숭덩 썰고 청양고추도 넣어 매운탕을 끓였다. 오후 3시. 그 다음에 무엇을 하겠는가. 나는 즉시 동네 곳곳에서 일하고 있는, 조금은 젊은 또래분들을 불렀다. 농약을 치다 달려온 형님과 얼마 전 귀향한 자치동갑 동무, 맷돌호박 심을 준비에 바쁜 깨복쟁이 친구, 최근에 사귄 ‘속세자연인’ 친구 그리고 마침 집 앞을 지나가는 아재와 이웃집 할머니. 새우탕에 모두 눈을 반짝거렸다. 예닐곱 명이 ‘툇마루’에 앉아 맛을 보더니 탄복을 한다.

  막걸리와 소줏잔이 오고갈 것은 당연지사. 툇마루 만들겠다는 오랜 소원을 이제야 푼 것 같다. 행인을 불러댄 것은 더욱 잘한 일. 이렇게 음식 한 가지라도 베푸는 것이 적선이 아닐까. 그것보다 이 분위기가 너무 오붓하고 재미가 절로 났다. 모두 ‘봄’을 준비하려 ‘순식간’에 떠나간 툇마루를 걸레로 훔친다. 마루를 닦을 때마다 나는 제법 경건한 마음을 갖는다. ‘쇄소응대(灑掃應對)’라는 단어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집안을 쓸고 닦고, 부모가 부르거나 손님이 오면 곧바로 대답하고 나아가는 일은 가정교육의 핵심이 아니던가. 이제 또 누가 이 툇마루에 앉을 것인가, 즐거운 상상을 한다.

 최영록(생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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