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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재원 확충 없는 ‘문재인 케어’ 지속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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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6-25 06:00:18   폰트크기 변경      
   

  “여기가 진짜 선진국이다.” 외국인들이 놀라는 ‘경험의 순간’이 바로 한국의 의료서비스다. 94%는 다시 한국의 병원을 찾고 다른 사람에게도 추천하겠다고 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작년에 조사한 외국인 환자의 만족도다. 실제로 외국인 환자 수는 최근 10년간 매년 22.7%씩 늘어나 2018년엔 37만명이 넘었다. 물론 우리 국민도 만족한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도 관심을 보였던 ‘문재인 케어’ 덕분이다. 정부는 비급여 항목을 줄여 임기 말까지 2016년 62.6%였던 건강보험 보장률을 70%까지 올리는 게 목표다. 이전 정부들이 쌓았던 건강보험적립금 21조원을 풀고 매년 3% 정도의 보험료를 인상하면 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의료복지가 늘어나는 걸 싫어할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지난 7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엉뚱한’ 자료를 냈다. 지난달 한국리서치가 경총의 의뢰로 건강보험 부담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가입자들이 현재의 의료복지를 신뢰할 거라는 믿음이 꽤 빗나갔다. 정부의 보장성 강화를 위한 건보료 인상에 75.6%가 동의하지 않았고, 최근 3년 보험료율 인상이 높아(79%) 현재의 건보료에도 부담을 느낀다(62.9%)고 응답했다. 응답자의 55.7%는 다음 세대들이 지금과 같은 의료서비스를 받기 어려울 거라고도 했다. 건보료 인상이 부담되어 앞으로 의료 혜택이 지속될지 의문을 던진 것이다. 보험 가입자인 전국 성인 남녀 표본 1174명의 인식이 주는 의미는 간단치 않다. 문제는 재정이다.

  우리나라는 고령화에 따른 의료 이용의 증가, 보장성 항목의 확대, 의료서비스 가격 상승 등으로 건강보험의 지출이 빠르게 늘고 있다. 대통령은 취임 후 건강보험 강화대책(2017. 8)을 내놨다. 성형과 미용만 빼곤 모두 급여로 전환한다는 게 골자다. 이를 위해선 임기 말까지 소요될 재정이 약 30조6000억원이다. 이전 정부 때보다 4배 이상 늘어나는 규모다. 보장성 확대는 환자의 의료비 완화→의료 이용량 증가→재정 지출 증가로 이어진다. 이미 우리 국민의 의료 이용은 세계 1위다. 연간 평균 16.6회씩 병원을 찾아 OECD 평균 7.1회의 두 배가 넘는다. 같은 기간 미국과 영국은 각각 4회, 5회이고 우리 다음인 일본은 12.6회다(OECD, 2017년 기준). 때문에 건강보험 수지는 2018년 들어 177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당초 예상보다 지출이 늘면서 건강보험적립금도 빠르게 줄고 있다. 2026년이면 건보 적립금이 고갈될 것으로 전망한 국회 예산처의 추계를 앞선 속도다. 의료비 지출이 늘어나는데 국고 지원율은 최근까지 오히려 감소했다. 정부의 예산을 줄이는 대신 보험료를 인상해 부족한 재원을 충당하겠다는 얘기다. 이게 가능할까.

  최근까지 깊어진 불황으로 가계소득이 줄어 가입자들이 보험료 추가 부담에 반대하는 건 당연하다. 사업장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평균 임금이 올라 법정 보험료가 연쇄적으로 상승했고 보험료율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문재인 케어 이후 지난 2년간 보험료율이 5.56% 인상되는 동안 직장가입자가 실제로 내야 하는 건보료는 임금상승에 따른 보험료 증가분을 포함하면 작년까지 11%나 올랐다. 경제 침체로 소득이 늘지 않는 올해도 건보료는 3.25% 올라 기업과 자영업자, 지역가입자, 근로자 모두의 부담이 함께 늘어났다. 4대 보험으로 종업원이 내는 건강보험료(6.67%)와 국민연금(9%)의 50%,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은 전액 부담해야 하는 사업주들의 여건은 악화일로다.

  성공적인 의료서비스는 수요자인 국민 그리고 공급자인 의료계와 충분한 논의를 전제로 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발표되고 시행된 정책엔 늘 후유증이 따른다. 40%로 낮춘 지 불과 18개월 만에 80%로 원상 복귀한 뇌MRI 진료비는 그 전조다. 보장성 강화를 위해 실행 방법과 속도, 재정 확충에 대해 신중하지 못했던 정책의 결과가 우려된다. 서둘러 해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상위 10%가 전체 소득세의 86%를 내고 상위 1%의 대기업이 전체 법인세의 74%를 부담하는 최악의 조세 불평등 국가다. 늘어날 건보료까지 이들에게 떠넘길 건가.

더 많은 혜택을 누리기 위해선 국민이 더 많은 세금을 내든지 환자 본인이 더 부담해야 한다. 이 불편한 진실을 알리고 국민을 설득하는 건 대통령과 정부의 책임이다. 그게 어렵다면 문재인 케어는 지속가능한 정책이 아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누군가 쓰면 누군가 내줘야 한다. “국민 모두 의료비 걱정에서 자유로운 나라, 어떤 질병도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은 환상이다. 국민소득 3만달러 국가에서 그런 지상낙원은 가능하지 않다. 외국인 환자들도 한국의 의료보장 제도가 잠깐이었다는 걸 금방 깨닫는다.

 

 허희영(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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