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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
체육계의 상습적인 폭력이 또다시 생명을 앗아갔다.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경기) 최숙현 선수가 지난달 26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 선수는 고교 시절부터 각종 대회에서 메달을 휩쓸었던 유망주. 하지만 고2 때부터 이어졌다는 현재 소속팀 감독과 팀닥터의 구타와 폭언은 결국 23세의 젊은 선수를 슬픈 선택으로 내몰았다.
영화 ‘4등’의 ‘준호’(유재상)는 수영에 재능이 있지만 매번 4등만 하는 아이다. 1등에 대해 집착하는 엄마 ‘정애’(이항나)에 의해 새로운 수영 코치 ‘광수’(박해준)를 만난다. 하지만 준호와 함께 PC방만 전전하는 광수. 이에 “1등을 만들어 달라”고 반항한 준호는 광수의 그릇된 가르침에 스위치를 켜고 만다.
사실 광수는 엄청난 선수였다. 고교시절부터 한국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하지만 악마의 재능만큼 잡기에 능했고, 결국 국가대표 선수촌을 무단이탈한다. 하지만 때는 80년대. 결국 광수는 감독의 구타에 반항해 국가대표를 때려치웠고, 그저 그런 인생을 살다 준호의 수영코치로 자리하게 됐다.
폭력이란 어떤 이유에도 용납돼선 안 된다. 하지만 폭력은 늘 합리화에 능하다. “아이가 맞는 것보다 4등이 더 무섭다”는 엄마, “어긋날 때 잡아주고 때려주는 게 진짜 선생님”이라는 광수는 1등만 기억하는 현실이 만든 사회악이다. ‘사랑의 매’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맞지 않고 잘 해야 진짜 실력이고, 때리지 않고 성적을 향상시켜야 진짜 좋은 선생님이다. 하나 엄마와 광수의 말에 조금이나마 수긍하는 관객도 있을 터, ‘4등’의 메시지가 더 필요한 이유다.
스타트부터 결승점까지, ‘1등’을 향해 줄지은 수영장의 레인은 우리 사회가 그어놓은 ‘성공’으로 향하는 수직가도다. 앞으로가 아닌 옆으로, 그리고 위가 아닌 아래로 향하는 준호의 잠영이 너무나도 처연해 눈물이 나오는 건 우리 모두가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성공’을 강요받아왔기 때문일 터다.
‘4등’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지원했다. 인권, 인간의 권리를 존중받지 못한 이에게 남기는 위로이자 그것을 무시한 이들에게 향하는 경고인 셈. 하지만 고 최숙현 선수의 일기장에 적힌 글, 휴대폰에 녹음된 구타 현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남겼던 한 줄의 메시지에 비추어 아직도 현실의 그늘은 너무도 어둡고 슬프다. 모두의 공분과 함께 이번 사건이 꼭 명명백백 밝혀지기를.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
권구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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