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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누더기 속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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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7-20 06:00:20   폰트크기 변경      

  아들 넷을 모두 공직에 내보낸 아버지가 있었다. 늘 부지런하고 검소하여 타의 귀감이 되는 어른이었다. 우리 집 단골 마실꾼이었는데, 새끼 꼬는 아버지의 짚풀 바람 사이로 윗목 벽에 기대어 이런 저런 세상사를 구수하게 들려주는 아저씨는 일찍이 내 눈에 초인(超人)으로 비쳤다. 동생들의 헌 공책을 떼어 말아 피는 봉초담배에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걸러내는 묘약이 들어 있는 듯, 두 분의 어조는 담담했다. 끊어졌다 이어지고 이어지다 끊어지고…. 그렇게 몇 시간씩 밤을 이어갔다.

 그 무렵 아저씨의 첫아들은 학교 선생님이고, 셋째는 공주의 고등학교로 먼 길 통학을 했으며, 넷째는 나보다 두 살 위로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다. 집에서 운영하는 양계장 일은 주로 둘째가 도맡았는데, 그는 이후 내 인생의 모델이 된다. 닭똥 치우기에 바빴던 그가 밥상머리까지 책을 놓고 지내더니 고등학교과정을 검정고시 쳐서 합격한 것이다. 이어 공무원시험에도 합격해 이젠 아예 직업이 바뀌었다. 가정 형편상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애면글면하던 나로서는 그야말로 바늘구멍만한 출구를 엿본 셈이었다.

 자식들이 줄줄이 공직으로 나아가도 아저씨의 행색엔 변화가 없었다. 도시 나들이가 아니고는 입성이 거의 누더기차림이었다. 바지 이곳 저 곳에 손바닥만 한 천을 덧대어 꿰맨 흔적이 훈장처럼 붙어 다녔다. 아저씨는 그 옷을 입고 마을 중심 길을 오갔고, 나는 그분의 뒤태에서 중후한 멋을 느꼈다. “저 양반의 의복에는 때가 묻어있지 않지. 암.” 지금도 귓가에 맴도는 아버지의 일갈이다.

 내면이 영근 사람은 외면의 화려함에 연연하지 않는다. 내 집의 창고를 채운 사람은 남의 집 창고를 보며 부러워하지 않는다. 의식의 창고에서는 쌀독바닥 긁는 소리가 나는데, 허영으로 물들어 헤어나지 못하는 소유자에게는 저절로 연민에 가까운 시선이 가 닿는 것이 맞다. 아울러 보물의 진가는 허름한 것으로 가린다 하여 가려지는 것이 아니다. 

 

김선화(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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