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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기관 리포트> 갑을(甲乙) 관계와 우월적 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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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5-23 11:01:33   폰트크기 변경      

 

   
 최근 화두인 경제민주화의 중심에 갑을(甲乙) 관계가 중심에 있다. 양자 거래에서 일방이 갑이고 다른 일방이 을인 갑을 간의 거래는 불공정하기 때문에 규제를 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이들 거래를 우리나라에서는 하도급거래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하도급법),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가맹사업법) 및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유통업법)을 제정하여 규제하고 있다. 이들 법의 특징은 이들 거래를 유형별로 구체화하여 특정 유형의 거래를 불공정거래 행위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제정된 법률은 하도급법이다. 하도급법은 공정거래법(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이하 공정거래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불공정 행위 유형의 하나인 ‘우월적 지위 남용’(Abuse of Dominant Position: 자기의 거래상의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상대방과 거래하는 행위)으로 인한 불공정 행위 중 하도급 거래에 관한 사항을 별도로 규제하기 위하여 ‘공정거래법’의 특별법으로 1985년  제정되었다. 가맹사업법은 2002년, 유통업법은 2012년 1월에 제정되었다. 과연 이러한 법률이 규제하고 있는 거래 관계는 항상 일방이 갑이고 다른 일방이 을인 관계인가? 갑을 관계를 규정하는 본질은 무엇인가? 본고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논의하고자 한다.

 △우월적 지위의 개념

 전통적으로 공정거래법에서 우월적 지위(Dominant Position) 여부는 시장 지배력(Market Power)으로 정의하고, 시장지배력은 시장 점유율(Market Share)을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시장지배력이라 함은 일정 기간 동안 재화나 서비스의 가격, 생산량 및 제품의 다양성과 품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장 내에서의 힘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특정 기업의 시장 점유율이 일정 부분 이상 되어야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는 것이 공정거래법의 전통이다. 예를 들어, 캐나다 경쟁당국(Competition Bureau)은 하나의 기업이 시장점유율이 35% 이상 이어야 우월적 지위(Dominant Position)에 대해서 조사를 하고, 수개의 기업인 경우에는 시장점유율이 60% 이상이어야 우월적 지위의 남용에 대해서 조사를 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경제적 의존성(Economic Dependence)을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기 위한 보완(Complementary) 지표로 사용한다. 즉, 시장점유율로 평가하는 시장 지배력이 낮은 경우에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는 개념이 경제적 의존성이다. 예를 들어, EU 법원(Court of Justice)은 1978년 ‘United Brands’의 판례에서 우월적 지위를 정의하였는데 이 정의가 통상적으로 인용되고 있다. EU 법원은 우월적 지위(Dominant Position)를 “상당한 정도까지 경쟁자ㆍ고객ㆍ최종소비자와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힘을 가짐으로써 유효한 경쟁을 유지하는 것을 금지할 수 있는 경제적 힘”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정의에 따라 판결한 판례를 정리하면 우월적 지위는 시장지배력(Market Power)을 의미하는데, 구체적으로 시장점유율(Market Share), 진입장벽ㆍ구매자의 힘(Barriers to entry, Potential Competition and Buyer Power) 및 경제적 의존성(Economic Dependence)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결정하고 있다. 진입장벽은 잠재적인 경쟁자가 시장에 접근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하며 시장점유율이 높은 경우에도 구매자가 시장지배력을 상쇄시킬 수 있기 때문에 우월적 지위를 판단할 때 이들 요소를 고려하고 있다.

 1973년 독일의 ‘경쟁제한금지법’(GWB: Gesetz gegen Wettbewerbsbeschrㆍnkungen)도 사업자가 중소기업과 거래를 할 경우 경제적 의존성을 지니고 있으면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고 있는데, 충분하고 합리적인 거래처 변경의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으면 우월적 지위가 존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독일 GWB 제20조 제2항).

 일본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우월적 지위 여부 판단을 수급사업자의 원사업자에 대한 거래 의존도, 원사업자의 시장에 있어서의 지위, 수급사업자의 거래처 변경 가능성, 거래 당사자 사이의 규모의 격차, 시장의 수급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결정한다[일본 공정거래위원회(평성 22년), ‘우월적 지위의 남용에 관한 독점금지법의 사고’참조].

 이상을 정리하면 거래에 있어 어느 일방의 우월적 지위는 첫째, 양방 거래에서 거래의 어느 일방(甲)의 우월적 지위는 독과점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는 기업에서 나타나고, 독과점 산업에서 어느 정도의 시장 점유율을 갖고 있지 않는 기업의 우월적 지위 여부는 상대방의 거래처 변경의 가능성을 우선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거래에서 협상은 일방이 타방에 대하여 어느 정도 ‘협상력의 우위’(Bargaining Power)가 존재한다. 이러한 협상력의 우위를 우월적 지위라고 인정하면 모든 거래가 규제의 대상이 된다.

 △가맹사업거래, 대규모유통업거래 및 하도급거래의 우월적 지위

 첫째, 가맹사업거래를 살펴보면 프랜차이즈 가맹본부는 대부분 독과점 시장으로 가맹사업자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우월적 지위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대규모 유통 시장은 백화점ㆍ대형마트ㆍTV홈쇼핑 시장은 독과점시장 구조로 납품업자 및 매장 임차인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우월적 지위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하도급법이 규제하고 있는 하도급 거래는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에 대해서 우월적 지위가 존재하는가ㆍ 많은 사람들이 하도급 계약에서 단순히 원사업자가 다수의 수급사업자 중에서 하나의 수급사업자를 선정하므로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에 비해서 ‘협상력의 우위’(Bargaining Power)가 있다고 하여 원사업자의 우월적 지위가 있다고 인정하여 규제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원사업자가 다수의 수급사업자를 선정하는 힘이 있으므로 협상력의 우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모든 거래에서 일방이 타방에 대하여 협상력의 우위가 있다. 그러나, 이를 우월적 지위라고 인정하면 모든 계약이 규제의 대상이 된다. 이는 우월적 지위의  개념을 너무 광의로 해석하여 계약 자유의 원칙의 기본을 해치는 것이다.    원사업자가 다수의 수급사업자 중 하나를 선정할 수 있는 협상력의 우위가 있다 하더라도 수급사업자가 원사업자에 비해서 우월적 지위를 갖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수급사업자가 자산전속성(Asset Specificity)이 높으면 수급사업자는 원사업자에 비하여 우월적 지위를 누릴 수 있다.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에 비해 우월적 지위에 있는 경우란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에게 현저하게 불리한 계약 조건을 요청하여도 수급사업자가 이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경우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나라 ‘하도급법’은 하도급 거래의 거래상 ‘우월적 지위 남용’(Abuse of Dominance Position)으로 인한 불공정 행위를 방지하기 위하여 ‘공정거래법’의 특별법으로 제정했으면서도 불구하고, 하도급 거래의 특성상 원사업자의 우월적 지위가 존재하지 않는 하도급 거래도 불공정 거래로 규정하여 규제하고 있다.

 △건설하도급의 우월적 지위

 위에서 논의한 외국의 사례를 준용하여 판단하여 보면, 건설 하도급의 경우 일반적으로 어느 원사업자도 시장 점유율이 상당 수준으로 높지 않고, 특정한 수급사업자는 수많은 원사업자와 거래를 할 수 있고, 원사업자가 항상 수급사업자보다 규모가 큰 것도 아니므로,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에 비하여 우월적 지위를 갖고 있지 않다. 단지,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를 선정할 수 있는 협상력의 우위가 있을 뿐이다. 이러한 협상력의 우위를 우월적 지위의 남용으로 보아 자율적으로 결정된 가격을 가격 후려치기로 간주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경쟁산업인 건설산업에서 자율적인 하도급 공사금액 결정을 가격후려치기라고 보는 것은, 지방의 의류소매상이 서울의 동대문시장이나 남대문시장의 의류 도매상에서 가격이 너무 높다고 하여 규제 당국에 가격 상한을 설정해 줄 것을 요청하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주로 원사업자가 되는 종합건설업체는 2011년 기준 대기업이 116개사에 불과하고, 중기업이 1059개사, 소기업이 9002개사이다. 주로 수급사업자가 되는 전문건설업체도 대기업이 305개사, 중기업이 2287개사, 소기업이 3만3917이다(<표 1> 참조).

 즉, 건설산업은 독과점 산업이 아니므로 1개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상당 수준으로 높지 않고, 수급사업자도 다수의 원사업자와 하도급 계약을 체결할 수 있으므로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에 비해서 우월적 지위를 갖는다고 볼 수 없다. 2011년 기준 원도급을 주로 받는 종합건설업체는 1만177개사이고, 하도급을 주로 받는 전문건설업체는 3만3917개사로서 완전 경쟁에 가까운 산업이다. 일반적으로 구조적으로 우월적 지위가 나타날 수 없는 경우(예를 들어, 경쟁산업의 경우), 쌍방 거래에서 우월적 지위는 자산전속성(Asset Specificity) 등에 의해서 결정되는 시장에서의 위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지,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에 비해서 항상 우월적 지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자산 전속성이란 특정 자산이 특정 생산 활동에 관련되어 있는 정도로서 수급사업자가 자산전속성이 높으면 수급사업자는 원사업자에 비하여 우월적 지위를 누릴 수 있다. 따라서, 수급사업자가 원사업자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누리려면 다른 경쟁자보다 탁월한 시공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이에 비해, 독점 산업에서 수급사업자가 아무리 좋은 기술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수급사업자는 원사업자에 비하여 우월적 지위를 누릴 수 없다. 왜냐하면, 원사업자가 거래를 중단하면 수급사업자는 아무리 좋은 기술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영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독점산업에서는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에 대해서 우월적 지위를 가지게 된다.  즉, 독과점 산업인 자동차산업에서는 수급사업자가 거래선을 변경할 수 있는 여지가 없기 때문에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에 비해서 우월적 지위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독과점 산업인 경우 원사업자의 우월적 지위 남용을 방지하기 위하여 원사업자외 수급사업자의 관계를 갑을 관계라고 규정하여 ‘하도급법’을 적용할 수 있으나, 건설 하도급을 갑을 관계라고 규정하여 ‘하도급법’ 적용 대상으로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나라 하도급법과 유사한 일본의 하청업법과 이탈리아의 하도급법도 건설하도급은 규제의 대상이 아니다.

 이의섭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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