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3일 미국 뉴욕의 지하철역에서 가슴 아픈 사건이 발생했다. 시비를 걸어오던 흑인 부랑자에게 떠밀려 선로로 떨어진 한국인 교포가 열차에 치여 사망한 것이다. 20초가 넘는 시간 동안 플랫폼으로 올라오려 애썼지만 아무도 구조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주변의 승객들은 휴대전화와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촬영하기 바빴다. 절체절명의 순간을 포착한 사진기자도 ‘플래시를 터뜨려 기관사에게 경고를 보냈다’고 변명했지만 다음날 언론사에 사진을 판매해 비난을 받았다. 서울의 지하철처럼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비극이다.
서울도시철도공사와 서울메트로는 1990년대부터 각 지하철 역사에 스크린도어(PSD)를 설치해왔다. 승객의 안전 확보와 승강장의 공기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운행되는 열차의 차종이 다양해서 단일한 방식으로는 스크린도어 설치가 어려운 승강장이 많다.
이에 따라 교통연구원은 ‘로프형 스크린도어 시스템(RPSD, Rope-type Platform Screen Door)’을 개발, 상하 개폐 방식의 장점에 따라 기존 스크린도어 설치가 어려운 곳에서도 적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열차 차량의 길이, 열차 출입문의 위치, 정위치 정차 여부에 관계없이 설치·운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는 세계 최초다.
△모든 승강장에 스크린도어 설치해 안전사고 예방한다
스크린도어는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 교통약자의 이동 편의를 보장하고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다. 도시철도는 총 528개 중 378개의 역사에 설치를 마쳤고 향후 30개 역에 추가 설치할 예정이다. 국토해양부는 2017년까지 5351억원을 들여 일반철도 200개 역에도 스크린도어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전국에 촘촘하게 철로가 깔린 이웃나라 일본도 스크린도어 설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2011년까지 5년 동안 매년 평균 200건 이상의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등 철도 승강장에 대한 위험 의식이 높아졌다. 이용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추가요금을 지불해서라도 안전을 위해 스크린도어를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이 전체의 80%를 넘었다.
일본은 이용객 10만명 이상인 승강장에 대해 의무적으로 스크린도어를 설치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그러나 승강장의 형태와 열차의 종류가 다양해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설치가 불가능한 곳도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고속철도(KTX)는 기존 열차와 새로 배치된 산천 차량의 출입문 위치가 다르다.
경춘선과 경부선은 일반 전동차와 ITX, 누리로 등 제조사가 다른 여러 종류의 급행전동차(EMU)가 혼재되어 있다.
△곡선 승강장에도 설치 가능한 로프형 시스템
교통연구원이 연구 개발 중인 ‘로프형 스크린도어 시스템(RPSD)’은 차량의 종류나 승강장의 형태에 관계없이 적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기존의 시스템이 가진 3가지의 단점을 개선한 덕분이다.
첫째, 직선 움직임을 위한 LM(Linear Motion) 가이드 시스템을 레일슬라이딩(rail sliding) 타입으로 변경했다. 와이어로프의 장력 방향 쪽으로 정하중의 힘이 작용하게 되어 있어 곡선 승강장에 적용했을 때도 편하중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전체적인 구조가 간단해 차후 일상정비와 문제 해결에도 용이하다.
둘째, 2개의 바퀴가 연결된 더블 시브(double sheave) 방식을 채택해 하나의 실린더만으로도 구동이 가능하다. 기존에는 하나의 본기둥에 2개의 실린더가 장착되어 동작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더블 시브는 하나의 축에 서로 크기가 다른 2개의 벨트 드럼을 연결해 상승과 하강의 높이를 조절하게 되어 있다. 문제가 발생할 확률도 그만큼 적은 것이 장점이다.
셋째, 각각 분리되어 있던 6개의 와이어로프를 하나로 연결했다. 로프의 장력을 균일하게 유지하고 향후 정비와 교환이 쉽도록 하기 위해서다. 무엇보다 큰 특징은 문이 위아래로 오르내려 출입문의 위치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6량의 열차가 승강장에 진입했을 때 전체 도어가 한꺼번에 열릴 수도 있고 1량 단위나 2량 단위로 열릴 수도 있다. 곡선구간에도 설치할 수 있으며 비용도 기존 시스템의 절반까지 낮출 수 있다.
△버스전용차로나 아동보호구역에도 설치 가능
시스템 개발에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좌우로 여닫히는 기존의 스크린도어 방식에 익숙한 승객의 인식을 전환하는 데 애로를 겪었다. 문이 위로 올라간 상태에서 출입해야 하므로 도어 낙하로 인해 다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개발팀은 인체에 상해를 입힐 수 있는 요소를 해결하고 안전대책을 강구해서 우려를 불식시켰다. 철도운영기관과도 여러 차례 테스트와 의견 수렴을 거쳐 최종적인 시제품을 만들었다.
일본의 도큐전철 등 사철회사 직원들을 초청해 제작현장을 견학시키는 등 적극적으로 홍보한 것도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되었다. 이들은 로프식 스크린도어에 몸을 던지기도 하고 와이어 블록에 머리를 넣어보기도 하면서 시스템의 안전성능을 점검했다. 두 와이어 블록 사이에 열쇠를 채우는 등 일부 승객의 예상치 못한 행동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기상황을 재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전상에 어떠한 문제점도 없는 것을 발견하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로프형 스크린도어 시스템은 현재 대구도시철도공사가 운영하는 문양역을 대상으로 시범 운영 중이며, 철도건널목이나 버스전용 중앙차로 등 일상생활 곳곳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현행 철도건널목은 단순한 막대 타입이라서 하부가 노출되어 있다. 보행자가 일부러 몸을 굽혀 통과할 수도 있고 연령이 낮은 아이들을 제지하지 못한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로프형 스크린도어 시스템을 철도 신호시스템과 연동시키면 보행자들이 안전하게 철도를 건널 수 있다.
버스정거장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버스전용 중앙차로는 좌측으로 버스가, 우측으로 일반차량이 지나가기 때문에 보행자 사고 위험이 매우 높다. 로프형 스크린도어 시스템을 미니 사이즈로 설치하고 교차로나 건널목 신호등과 연계시킨다면 교통사고 발생률을 현저히 낮출 수 있다.
김현 한국교통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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