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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기관 리포트> 발주자의 불공정 계약과 우월적 지위 남용 근절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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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3-23 17:31:58   폰트크기 변경      
   국내 발주자의 불공정한 계약이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권한남용 관행이 심각하다. 공공 발주자의 불공정 관행은 유사한 도급 공사를 수행하는 다수의 시공자에게 원가손실 등 불이익을 부당하게 감수하게 만든다. 이러한 문제가 팽배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설업체는 발주자와의 관계 악화로 인한 당해 공사의 수행 차질이나 후속 사업에의 악영향 등을 우려하여 정당한 권리 주장을 포기하며 손실 비용을 자체 부담하는 경우가 많았다. 공공공사 현장에 만연해 있는 불공정 관행을 근절할 방안 모색이 시급하다.

 공공 발주자의 불공정 관행의 실태

 2014년 실시한 공공공사 시공업체 현장 직원을 대상으로 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설문 결과, 응답자의 85.3%가 발주자의 불공정 계약 또는 우월적 지위 남용 사례를 경험했다고 답변했다. 공사원가 영향에는 ‘크다’(56.7%), ‘매우 크다’(28.3%), 공정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46.7%), ‘매우 크다’(21.7%)로 답했다. 이런 피해가 보상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극소수다. 「공사계약 일반조건」과 관련한 14개 항목의 권리 피해를 경험한 사례는 총 378건으로 피해 발생 비율이 평균 46.6%인 반면 피해 사례 중에서 계약적 권리를 보상받은 경우는 평균 6.5%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공사계약 특수조건」상의 부당한 10개 특약과 관련한 권리 피해도 148건으로 평균 27.3%이지만 계약적 권리를 보상 받은 경우는 평균 3.1%에 머물렀다. 계약 조건 이외 추가공사 및 업무 지시와 관련한 4개 항목에 대한 피해를 경험한 사례도 123건으로 피해 발생 비율이 평균 57.1%이지만 계약적 권리를 보상 받은 경우는 평균 3.5%에 불과했다.

 응답자가 권리 청구 또는 피해 보상에 실패한 사유에 대해서는 ‘발주자와의 관계 악화 또는 후속 사업 영향 등을 우려한 청구 자체의 포기’가 가장 높은 빈도를 차지했다. ‘발주자의 해당 사안 반려 또는 무마 시도로 시공자의 이의(클레임) 제기 자체가 차단된다’는 답변이 차순위를, ‘발주자의 협의에도 불구하고 관련 기준 또는 선례 부재를 이유로 조정 또는 보상이 불인정되고 있다’는 답변이 3순위로 꼽혔다.

 공공 발주자가 시공자의 정당한 권리 행사에 소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현장 실무자들은 정부의 예산 절감 기조에 입각한 발주기관의 경영평가와 계약 담당 공무원의 인사고과 평가체계 등이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한다. 단위 현장의 성과 평가가 예산 절감 위주로 이뤄지기 때문에 발주기관의 계약 담당자는 현행 제도의 맹점을 이용하거나 사전 협의 과정에서 권리 주장 자체를 사실상 차단시키는 편법적 행위를 반복한다는 얘기다. 특히 외형적으로 예산이 절감되면 각종 감사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공공 발주기관은 국민 세금의 효율적 운용, 국고의 낭비 방지, 예산 절감 등의 명분을 내세워 부당한 특약 설정이나 설계변경에 따른 계약 금액의 조정을 최소화하는 내부지침까지 운영하고 있다.

 공공 발주자의 불공정 관행 근절 방안

 2014년 국토연구원이 발주기관 직원을 대상으로 불공정 행위 근절 방안에 관해 질의한 결과, ‘정부 사업 예산의 적정성 확보’가 가장 유효한 대안으로 응답됐다. 공공기관의 예산절감 과정이 변질돼 시공자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제한하고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는 사례로 이어진다는 점을 발주기관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적정한 사업예산 확보 없이 투입 예산만 기준으로 판단되는 왜곡된 성과 평가 체계가 근본적으로 수술되지 않는다면 건설산업에서 공정한 거래 질서 확립은 요원한 과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불공정 피해 발생 빈도가 높은 사안에 대해서는 계약 당사자의 권리, 의무, 책임 한계 등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게 우선이다. 계약 조항이 구체적일수록 계약 당사자간 클레임 발생은 줄어들 수 있다고 보고된 바 있다. 「공사계약 일반조건」에서는 설계변경 관련 계약 금액의 조정, 공기 연장 간접비 보상 등 기타 계약 내용으로 인한 계약 금액의 조정, 공사 용지의 확보, 휴일 및 야간 작업에 대한 보상 등에 대한 규정의 검토가 요구된다. 「공사계약 특수조건」에 포함되어 시공자의 계약적 권리를 부당하게 제한하는 독소 조항, 즉 발주자의 업무를 시공자에 전가, 계약 조건의 해석을 발주자에 따르도록 강요, 설계변경시 부당한 단가 적용, 공기 연장에 따른 간접비 청구 제한하는 등의 특약도 개선되어야 한다. 발주자가 당초 계약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추가 공사 또는 업무를 지시하는 경우 이에 대한 시공자의 합당한 비용 청구와 보상을 인정하는 규정도 보완되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계약 당사자간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공사계약 일반조건」을 계약 상대자인 시공자의 권리 행사가 가능한 체제로 개선해야 한다. 해외 공사에서 통용되는 국제엔지니어링연맹의 표준계약서와 우리나라 「공사계약 일반조건」을 비교해 보면 차이는 명확하다. 국내 「공사계약 일반조건」에서는 계약 이행시 시공 계약자의 권리 행사가 가능한 사안은 피상적으로만 기술되어 있다. 공사 원가 및 공정에 영향을 주는 관련 조항에 관해서는 시공자의 권리 주장이 가능하도록 계약적 권한을 구체적으로 명문화시키는 개정 작업이 필요하다.

 「건설산업기본법」 또는 계약 예규상의 「공사계약 일반조건」등에서 보복 조치에 대한 금지 조항의 신설도 필요하다.「공정거래법」제23조의 3(보복 조치의 금지)의 규정을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발주자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시공자의 모니터링 제도 도입

 실질적 제도 집행력을 강화할 수 있는 현장 차원의 장치 마련이 우선이다. 발주자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시공자의 모니터링 제도는 현행 「건설기술진흥법」제52조에서 규정한 건설공사시공평가제도에 대응하는 체제로 운영될 수 있다. 시공자가 발주자에 공기연장에 따른 간접비 보상과 같은 불공정 거래 관행에 관한 문제 제기를 하는 경우, 건설공사 시공평가제도가 시공자를 보복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상황인 만큼, 그 제어장치가 필요하다. 시공자의 모니터링 평가제를 건설공사시공평가제도와 연계해 설계하면 발주자의 업무 수행 공정성을 평가할 대응정책으로 유의미할 수 있다.

 공공 발주기관과 계약 담당 공무원에게 인센티브도 부여해야 한다. 현행 정부 기조와 성과 평가 제도 하에서, 공공 발주기관과 계약 담당 공무원이 공정한 계약 업무 처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실질적인 인센티브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발주자의 불공정 사례를 처벌하는 ‘금지적(negative)’ 방식만 강조하면 은폐 등의 제재 회피에만 집중할 것이므로, ‘건설적(positive)’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공공 발주자가 선제적으로 불공정 관행을 개선하거나 앞서 제안한 시공자의 모니터링 제도를 통해 우수 발주자로 선정되면 가점을 주거나 계약 담당 공무원에게 승진 가점을 주는 방식 등이 고려될 수 있다.

 불공정 관행 및 우월적 지위 남용의 근절 방향에 관한 설문에서 ‘상호 호혜적 계약관리 문화 정착을 위한 발주자의 인식 전환’이 가장 효과적 해결 방안으로 지목된 바 있다. 공정한 거래 문화를 확립하려는 발주자의 올바른 인식 전환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관련 정책 및 제도, 계약 조건 등이 공정한 체제로 정비된다 하더라도 실질적 효과는 의문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실제 공공공사 현장에서 발생하는 불공정 관행은 발주자의 우월적 지위를 활용하여 시공자가 공식적으로 제기할 수 없도록 더욱 교묘한 방식으로 은폐 또는 조작될 수 있는 양상으로 진행될 수 있는 것도 우려된다.

 국내 발주기관은 순환보직제로 인해 소위 ‘님트(Not-In-My-Term)’현상이 만연해 있다. 자신의 보직기간에만 성가신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책임 의식 부재로 인해, 발주자의 권한 남용 사례가 지속되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발주 및 계약에서부터 준공까지 책임자를 지명하여 운영하는 전향적인 방안의 도입도 검토해야 한다. 만약, 투명성 확보 등의 이유로 순환 보직 체제의 유지가 필요하다면, 계약 관련 업무 담당자의 전문성을 제고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직업윤리 교육을 포함한 계약 관련 업무 전반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하는 체제가 마련되어야 한다.

   
 

 제공=김원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정리=김국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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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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