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로 재정난에 직면한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20조원에 달하는 첫 달러화 표시 국채 매각(발행)을 성공리에 끝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0일 보도했다. 4배에 가까운 수요가 몰릴 정도였다.
사우디는 이번에 모두 175억달러(약 19조7000억원)어치의 달러화 표시 국채를 발행했다. 앞서 165억달러어치를 팔아치운 아르헨티나의 기록을 넘어서면서 신흥국 사상 최대 규모를 경신했다.
아시아 투자자와 연금펀드, 보험사들이 몰리면서 입찰금액은 발행규모의 3.8배에 달하는 670억달러(약 75조2000억원)를 기록했다. 사우디는 첫 달러화 표시 국채가 발행 전부터 인기를 끌자 당초 150억달러로 예정했던 발행규모를 늘렸다.
사우디가 발행한 국채의 금리는 5년물과 10년물, 30년물이 각각 2.6%, 3.41%, 4.63%였다. 이는 신용등급이 더 높은 이웃 국가 카타르가 발행한 국채금리에 비해 0.4%포인트 높고, 석유 기업 BP나 셸의 회사채 금리보다 1%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사우디가 첫 외채 발행에 나선 것은 석유에 대한 경제의존도를 줄이려는 계획의 일환이다. 유가는 2년 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다.
사우디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기업공개(IPO)도 준비 중이다.
리처드 하우스 스탠더드 라이프투자 신흥국 채권부문 대표는 “사우디로서는 명백한 대성공”이라며 “사우디가 매력적 투자처이기는 하지만 솔직히 말해 투자자들이 수익률에 필사적”이라고 말했다.
올해 들어 선진국 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에 머물면서 신흥국 국채는 큰 인기를 끌었다. 아르헨티나와 카타르, 터키, 멕시코 등이 모두 거액 국채 발행에 성공했다.
모니카 말릭 아부다비상업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올해까지 사우디는 외채가 없었는데, 매우 의미있는 순간을 맞았다”면서 “유동성이 부족한 데다 내부 자금조달이 한계에 부딪쳐 외채를 발행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디 국채를 산 한 투자자는 “금리가 합리적인 수준이어서 앞으로 발행물량에 관심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사우디를 거대한 석유 기업으로 보고, 채권수익률을 얻기 위해 자산구성을 바꾸는 운용사들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투자자들이 재정상태나 개혁 프로그램에 대해 세세히 따질 것이기 때문에 사우디는 투명성을 높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디는 저유가가 지속된 데다 예멘과의 전쟁으로 올해 경제성장률이 1.2% 내려갈 것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은 전망했다. 사우디의 작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3.5%였다.
사우디 정부의 지난해 재정수입은 1620억달러로, 금융 위기로 유가가 폭락한 2009년 이후 최저치였고 전년보다 42% 감소했다. 올해 재정적자는 GDP의 13%에 달할 전망이다. 건국 8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던 작년의 16%보다는 축소된다.
현재 GDP 대비 5%인 사우디의 국가부채는 내년에는 20%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사우디는 올해 4월에는 글로벌 은행에서 25년 만에 100억달러를 대출했다.
지난해에는 국내 은행을 상대로 수도 리야드가 270억달러 규모의 지방채를 발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