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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텅빈 ‘엉터리’ 제품 즐비…車 무게 못견뎌 주저앉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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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5-08 05:00:14   폰트크기 변경      

[긴급점검] 도로 위 지뢰 ‘복공판’

<상> ‘복공판’ 현장 가보니


<중> 성능기준이 부른 참사

<하> 말많은 복공판…교통정리될까



도보용 계단에 쓰는 철판

복공판 가교로 사용하기도

파손된 콘크리트 복공판은

민원 있을 때만 땜질로 처방

 

   



“복공판 때문에 사고난 적은 없어요. 설계기준도 선진국 수준이고, 일반 도로처럼 엄격히 관리합니다.”(국토교통부 담당자)

과연 그럴까? <건설경제>가 가설교량(A대교)과 지하터널(B터널), 지하도로(C시청), 지하철(수서역) 등 용도별로 4곳의 주요 복공판 건설현장을 직접 찾았다.

주무부처인 국토부의 이런 자신감과 달리 취재 결과, 복공판 도로는 용도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각종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국회와 시청 등 입법ㆍ인허가 기관의 인근 현장마저 부실 복공판이 버젓이 설치돼 있었다.

복공판 시장은 연간 1600여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신규 공공발주가 약 600억원, 재활용 복공판 시장이 1000억원 이상이다. 시장 규모만 놓고 보면 건설산업 전체는 물론, 가설재만으로 대상을 좁혀도 미미하다. 하지만 ‘복공판 도로’ 대부분이 교통량이 많은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다.

신분당선 연장선 신사∼강남 구간(2.5㎞) 등 강남 한복판을 지나는 주요 도로가 복공판으로 뒤덮여 있다.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 동부ㆍ서부 간선도로 지하화, 제물포터널, 광화문 일대 지하화, 지하철 2호선 지상구간 지하화 등 대다수 지하개발사업에 복공판 도로가 깔린다. 복공판 아래 공간은 주형보와 주형보 지지보를 빼면 15∼30m가 텅 비어 있다. 교통량이 많은 복공판 도로에선 단 한번의 사고도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A대교 가교

20여m 높이의 A대교 임시 가교에서 내려다본 한강은 아름답기보다는 아찔했다. 하루 통행량 8만5000대 이상(양방향 17만대의 절반)의 차량이 다니는 3차선 가교를 원형 파일 7개가 구간별로 버티고 있는 모습은 자못 위태로워 보였다. 동행한 복공판 전문가 L씨는 “규격에 맞는 원형 파일과 H형강만 제대로 조이고 용접하면 더 많은 차량도 견딜 수 있다”며 “진짜 문제는 겉으론 멀쩡해보이지만 속이 썩은 복공판”이라고 말했다.

한강공원에서 A대교 가교로 올라가는 도보용 계단에는 평일인데도 자전거 마니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복공판 전문가는 “이 현장은 도보용 계단에 쓰는 철판을 덧댄 채널 복공판을 가교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가교 복공판은 검은색 계열의 미끄럼 방지용 포장으로 말끔히 처리돼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차량이 지날 때마다 덜컹거리는 복공판 자국이 선명했다. 복공판끼리 틈새가 벌어지고, 단차가 생긴 곳이 많았다.

국가건설기준(가설교량 및 노면 복공 설계기준)에 따르면 복공판은 틈새 및 단차가 없이 평탄하게 설치해야 한다. 복공판 사용성 검토 시 처짐은 2.5㎜ 이하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아울러 복공판을 떠받치는 주형보에 2곳 이상의 연결체결구를 설치해 복공판의 기울임이나 뒤집힘, 밀림을 막아야 한다.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가 2017년 펴낸 ‘복공판 설계편람’에선 복공판 표면 단차를 20㎜ 이내로 규정하고 있다. A대교 가교는 한눈에 봐도 기준 미달 복공판이 즐비했다.

A대교는 교량 노후화로 정밀안전진단 결과 C등급을 받아 유지보수 방침이 정해졌다. 서울시는 교량 하부 교각부 콘크리트의 균열 부분을 보수하고, 노후한 교량 상부 슬래브 콘크리트를 전면 교체키로 하고 단계별로 보수ㆍ보강작업에 착수했다. A대교 가교의 유효기간은 오는 6월30일이다. 부실ㆍ부적정 복공판의 ‘물증’도 함께 사라진다.

 

#C시청 지하차도

“인허가 관청 앞 복공판 상태가 이 정도일 줄이야….” C시청 앞 사거리는 마치 거대한 바둑판처럼 온통 복공판으로 도배돼 있었다. 그런데 콘크리트 복공판(강합성 복공판)과 강재 복공판이 뒤섞여 있었다. 마치 구멍난 옷을 급히 꿰맨 것처럼 누더기옷 모양이다. 동행한 복공판 전문가는 “깨진 콘크리트 복공판을 방치했다가 민원이 빗발치면 그때그때 강재 복공판으로 보수한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C시청 지하차도 1㎞ 남짓 구간을 지하화하는 사업이다. 건널목을 건너는데 금이 가고 움푹 파인 콘크리트 복공판이 눈에 들어왔다. 사거리에 설치된 콘크리트ㆍ강재 복공판들은 단차가 안맞고, 틈새가 크게 벌어져 있었다.

공사 자재를 쌓아둔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얼마전까지 건널목에 설치됐음을 알려주는 흰색 도료 자국이 선명한 콘크리트 복공판이 쌓여 있었다. 금이 가거나 무참히 깨진 콘크리트 쓰레기 더미였다. 복공판 전문가는 “차량과 접촉하는 콘크리트 부위가 부서져도 장시간 방치했다가 도무지 안되겠다 싶을 때 교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체용 새 복공판 더미엔 공급업체명도 없이 검수날짜만 덩그러니 적혀 있었다. 이 현장에 복공판을 공급하는 업체가 특허를 냈다는 신형 복공판도 발견됐다. 신형 복공판은 복공판 핵심자재인 H형강을 반으로 자르고, 강성이 약해진 틈새를 나무로 메우는 방식이다. 복공판 전문가는 “H형강 1개로 복공판 2개를 만들어 원가를 낮추는 신기술이지만 복공판 안전측면에서 보면 엉터리 복공판”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복공판을 버티고 있는 말뚝과 주형보, 주형보 지지보는 괜찮을까. 복공판 아래 지하공간으로 내려갔다. 대형 H빔 말뚝은 곳곳이 녹슨 자국이 선명했다. 손으로 긁었더니 너무나 손쉽게 벗겨졌다. 복공판 전문가는 “콘크리트 복공판은 강성은 약한데 무거워서 지하 버팀 구조물을 더 튼튼하게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B터널ㆍ수서역

멀리 국회가 보이는 B터널 현장은 통행량이 많은 급커브 구간이다. 이 구간을 직접 차로 운전해봤다. 맑은 날인데도 복공판이 미끄러워 차고가 높은 SUV의 바퀴가 밀리는 느낌이 강했다. 빗길 안전사고가 잦다는 게 경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복공판 전문가는 “체크 무늬 철판으로 덮은 복공판을 썼는데, 미끄럼 방지 처리도 안돼 있다”며 “차량이 통과할 때마다 ‘텅텅텅∼’ 하는 소리는 얇은 철판이 구부러졌다가 다시 튕겨 올라오는 소리”라고 설명했다. 그는 “복공판 내부가 텅 비어서 나는 소리”라고 덧붙였다. 교차로는 일반도로(활동마찰계수 0.40)보다 미끄럼 방지 성능을 갖춘 복공판(활동마찰계수 0.45)을 써야 한다.

또 다른 복공판 전문가는 “코너 구간에 이런 엉터리 복공판을 깔았다는 것 자체가 자살행위”라며 “이런 복공판이 신월동까지 2만여장 깔려 있다”고 말했다.

B터널 사업은 7.53㎞ 구간에 왕복 4차로 지하터널을 건설하는 것이다. 민간투자사업으로 1ㆍ2공구로 나눠 추진되고 있다.

서울 강남구 SRT수서역사 앞 8차선 도로는 거대한 콘크리트 복공판 전시장이다. 이 현장은 콘크리트 복공판을 쓴 현장치고는 관리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복공판 전문가는 “과거엔 이곳도 깨진 복공판이 있었지만 민원이 거세고 보는 눈이 많다보니 즉시 교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복공판은 사용 중에 처짐, 균열, 찌그러짐ㆍ마모 등 파손으로 통행에 지장을 초래할 경우에는 신속하게 교체해야 한다. 기본을 지킨 현장을 찾기가 이렇게 힘들었다.

 

김태형기자 k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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