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압력밥솥을 바꾸는 데만 한 달이 걸렸다. 쿠쿠로 할지, 쿠첸으로 할지, 6인분짜리로 할지, 10인분짜리로 할지 고심하고, 또 고심했다. “매일 만나야 하는 녀석이니, 신중하게 골라야 해요”라고 했다.
그런 그녀가 요샛말로 ‘1일1깡’하듯 부동산 시장 뉴스를 보고 있다.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30대의 K후배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한 번의 투자로 수억원이 생긴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면서 현금부자에 대한 부러움과 로또와 같은 청약 결과를 기대하는 심리는 뒤섞였다.
평범한 직장생활로는 수년을 모아야 만질 수 있는 돈, 시세차익이 생기는 시대다 보니 그럴 만도 했다. 둘 다 모아 놓은 자금은 턱없이 부족했지만, 언젠가는 자신도 기회를 잡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커 보였다.
그래서일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부동산 시장에는 ‘로또 청약’,‘줍줍 청약’과 같은 신조어가 등장했다. 최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망포동에 조성될 ‘영통 자이’ 3가구 주인을 찾는 청약에 무려 10만1590명이 몰렸다. 지난달 대림산업이 무순위 청약을 받은 서울 성동구 성수동 ‘아크로 서울 포레스트’도 3가구 모집에 26만4625명이 신청하기도 했다. ‘시세차익’을 겨냥한 행렬이다. 아크로 서울 포레스트 97㎡ 분양가는 17억원 수준인데, 현재는 29억원 수준에 거래되고 있다 보니 ‘당첨만 되면 시세차익 수억원은 번다’는 말이 헛소리는 아닐 것이다.
현 정부는 20여번에 걸쳐 부동산 정책을 내놨다. 이 기간에 주택가격은 폭등해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 9억원을 뛰어넘는 상황에 이르렀고, ‘내 집을 마련하겠다’며 허리띠를 졸라매 온 수많은 서민은 대출 규제로 발목이 잡혔다. 반면 현금부자 앞에는 잔칫상이 펼쳐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부동산 투기를 부추긴 주범인지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낡은 집 대신 새 집을 마련하려는 재개발ㆍ재건축 조합원인지, 세금 지옥에서 벗어난 임대사업자인지, 무순위 잔여 세대에서 ‘줍줍’ 하는 현금부자인지, 투기를 부추겼다는 부동산 스타 강사들인지, 시장의 수요공급 법칙을 외면한 채 세금강화 정책을 쏟아낸 정부인지….
한형용기자 je8day@
〈건설을 보는 눈 경제를 읽는 힘 건설경제-무단전재 및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