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 머리 아파. 그냥 애들한테 들어가 살라고 하려고. 이참에 자취시키지 뭐.”
대학생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두고 있는 40대 여성. 그는 지금 강남구 삼성동에 자가(自家)로 살고 있고, 강북구에 아파트 두 채를 더 갖고 있다. 두 채 다 전세를 놓고 있지만, 지난달 임대차 3법이 통과되면서 앞으로 상황이 복잡해질 것 같아 보이자 자녀들에게 직접 들어가서 살라고 할 생각이다.
카페에서 엿들은 이야기다. 내 옆자리에 친구들과 함께 앉아있던 이 여성은 이어 그동안 만났던 ‘진상 세입자’에 대한 ‘썰’을 풀어냈다.
지난달 4일 전월세 신고법을 마지막으로 임대차 3법이 모두 통과됐다. 이날을 기점으로 대한민국 국민은 집주인 아니면 세입자, 두 종류로 나누어졌다.
임대차 3법과 관련한 기사에는 ‘너는 평생 월세나 살아라’, ‘너도 집주인이냐?’와 같은 집주인과 세입자가 서로를 비난하는 댓글이 잔뜩 달렸다. 카페에서 만난 이 여성은 집주인 편에 선 셈이다.
지난달 30일부터 지난 4일까지 일주일도 안 돼 국회 문턱을 넘은 임대차 3법은 내용에 대한 논의가 아닌 ‘임대인과 임차인’이라는 대결 구도만 남겼다.
하지만 집주인이기만 한 사람과 세입자이기만 한 사람은 예상보다 많지 않다.
지난달부터 열린 임대차 3법 반대 집회에는 집주인인 동시에 세입자인 사람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무대 위에 올라 ‘저는 임대인이자 임차인입니다’로 발언을 시작했다. 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도 국회 자유발언에서 같은 말을 했다.
특히 이들 중 수도권 신도시에 분양을 받은 30~40대들은 더 분노할 수밖에 없다. 신도시에 분양받은 새 아파트는 세를 놓고, 직장이나 자녀 학교 때문에 서울에서 세 들어 살고 있는 이들은 언젠가 서울 집을 처분하고 내가 평생 모은 돈으로 마련한 ‘내 집’으로 이사 갈 생각에 부풀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제 임대차 3법으로 인해 입주 초기 저렴한 가격에 받았던 전세는 몇 년 동안 올릴 수 없게 됐다. 지나면 전셋값이 회복할 것으로 예상하고 적어뒀던 가계부는 미처 대비할 시간도 없이 통과된 임대차 3법 때문에 하나둘씩 어긋나고 있다.
이처럼 지역마다 혹은 세대마다 다른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밀어붙인 ‘졸속 입법’은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에게 상처만 남기게 됐다. 국회는 뒤늦게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서로에게 모진 말을 쏟아낸 집주인과 세입자의 갈등을 얼마나 봉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오진주기자 ohpea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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