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떠들썩했지만, 미풍으로 지나갔던 태풍 ‘바비’는 제주도와 가거도에는 광풍이었다.
가거도에는 지난달 26일 밤 사람이 날라갈 정도라는 초속 43.4m의 강풍과 함께 가거도 파고는 13.1m에 달했다. 지난해 태풍 ‘링링’(12.5m)과 비교하더라도 0.6m 더 강력한 파고였다.
2013년부터 진행해온 ‘가거도항 방파제 복구공사’로 준비된 1만t짜리 대형 구조물 케이슨이 없었더라면 섬마을 전체의 안전이 크게 위협받을 수 있었다.
다음날 일부에선 ‘방파제’가 또 유실됐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 보도들이 나왔다. 태풍으로 인한 피해 상황을 언급했지만, 시각을 달리해보자. 유실된 300미터 규모의 방파제 덕분에 가거도 섬주민 모두의 안전을 지킬 수 있었다. 사람의 생명은 값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가치다.
산청군의 사례도 있다. 올해 유례 없는 집중 호우 속에서 2014년 시작해 2018년 준공한 ‘수해예방 하천 정비사업’의 결과로 산청군의 침수 피해는 전무했다고 한다.
이번 정부는 출범 때부터 토목건설사업을 철저히 배제해왔다. ‘토목’ 자체에 부정적이었다. 4대강 사업은 ‘적폐’였고,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경기 부양을 위한 토목사업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정부 출범 후엔 SOC 투자의 공백으로 경기침체가 시작되자 ‘생활형 SOC’란 해석도 모호한 개념을 들고 나왔다. 어린이집과 경찰서를 많이 만들어 내는 게 생활형 SOC라는데, 이 기준에서 보면 가거도와 산청군의 방파제 복구공사와 하천 정비사업은 정부 정의 상 생활형 SOC가 아니다.
하지만, SOC는 생활형과 비 생활형 이렇듯 구분이 없다. 주민의 생존을 지키고 안전하게 잘 수 있는 모든 토건사업 토목공사가 생활형 SOC다.
충분한 인프라투자를 했거나, 혹은 그렇지 못했던 결과가 ‘극과극’의 형태로 집중호우나 태풍 등 천재지변이 발생할 때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정부에선 경기 부양만을 위한 토목사업은 없다니 답답할 노릇이라는 게 건설업계의 중론이다. 최근 발표한 ‘한국판 뉴딜’에서 조차 대규모 토목공사는 없다고 입장을 명확히 했다.
올해 같은 집중호우가 되풀이 되지 않을 보장은 앞으로 없다. 그만큼 댐의 치수능력증대 사업이 시급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관심은 ‘실물’ 댐이 아닌, 데이터 댐에 꽂힌 듯하다.
임성엽기자 starle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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