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대한경제=최지희 기자] 레미콘 기사 A와 B는 울산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같이 다닌 40년 지기다. 집안 경조사와 경제적 곤란을 겪을 때마다 서로가 버팀목이었다. 선박용 부품제조공장에 다니던 B는 30세에 실직했다. 이때 A가 B에게 레미콘 기사 일을 권했다. A는 레미콘 기사인 사촌형 일을 도우며 20대 때부터 현장 일을 해왔다. B는 퇴직금과 대출을 통해 차량을 구입했고, A와 함께 현장을 누볐다. 휴일도 없이 하루 10시간가량 고되게 일을 했지만, 그에 따른 보상은 짭짤했다. 그렇게 둘은 레미콘 기사로 일하며 내 집 장만에 성공했고, 아이들을 모두 대학에 보냈다.
이제 고생은 끝이라고 생각했다. ‘노노 갈등’이 터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2018년 어느 날 B가 A에게 민주노총 가입을 권했다. 민노총이 레미콘 분과 신설을 앞두고 조합원을 모집하던 참이었다. 당시 경남 지역 레미콘 1회 운반비는 4만∼4만5000원 수준으로, 전국에서 가장 낮은 편에 속했다. B는 노조 가입을 통해 운반비를 올릴 수 있다고 설득했다. A는 거절했지만 민노총 산하로 1500여명의 지역 기사들이 모였다. 이후 노조는 파업 등을 통해 5만원으로 운반비 인상을 관철시켰다. 이후 운임비 인상 요구-파업-인상 관철은 연례행사가 되어 버렸다.
비노조원인 A는 민노총이 장악한 현장의 문을 넘지 못하고 일감의 상당 부분을 잃었다. 자기네 조합원을 쓰라는 민노총의 ‘압력’에 건설현장은 A에게 일을 주지 않았다. A는 분노가 누적됐지만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올해 초 A와 B는 같은 건설현장에 투입됐다. 해당 현장에서 민노총이 시공사에 단체협약을 요구했다. 시공사는 레미콘 기사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협약을 거절했다. ‘당연하게’ 파업이 시작됐다. 시공사는 부랴부랴 비노조원과 한노총 소속 레미콘 기사들을 찾았다. 최근 2년 사이 한노총과 지역 세력 다툼을 벌여왔던 민노총은 격렬하게 저항하며 현장 입구를 막아섰다.
타설을 위해 진입한 A의 차량으로 주먹만한 돌이 날아들었다. 레미콘 기사에게 차량은 전 재산이다 보니, A는 덜컥 겁이 났다. 그런데 날아오는 돌 사이로 B가 보였다. A는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운전석에서 내려 B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집단싸움이 벌어졌다. B는 코뼈가 내려앉는 부상을 당했다. B는 A를 고소했고, 합의를 거부했다.
40년 우정은 이렇게 산산조각이 났다. 집단 싸움이 벌어진 후 시공사는 민노총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협약 내용은 비밀에 부쳐졌다. 확실한 것은 A는 더이상 해당 현장에서 일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A는 일감과 친구를 모두 잃었고, 현재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최지희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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