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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차기 대통령 자질, ‘퀴즈왕’ 아닌 ‘통합형 리더십’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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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8-07 17:58:00   폰트크기 변경      

이달 말 출발 예정인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버스’에 탑승하기 위해 최근 입당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겨냥한 기존 주자들의 견제가 점차 거세지고 있다. 비록 ‘굴러온 돌’이지만 여론지지도에선 월등히 앞서고 있으니 누구 말대로 ‘신상 (新商)’의 포장을 벗겨내 부실한 실체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에서 흠집내기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그런 의미에서 윤 전 총장의 잇단 실언과 최 전 원장의 ‘준비 부족 인정’ 발언은 좋은 표적이 됐다. 윤 전 총장은 지난 4일 부산일보와 인터뷰에서 “일본에서도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것은 아니다. 지진과 해일이 있어서 피해가 컸지만 원전 자체가 붕괴한 것은 아니니 기본적으로 방사능 유출은 안 됐다”고 말했다. 또 최 전 원장은 같은 날 대선 출마선언을 한 뒤 기자들과 일문일답 과정에서 반도체 산업·기업규제·젠더 이슈 등에 대한 질문에 “아직 정치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충분히 준비된 답변이 없다.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답했다.

이에 경쟁주자인 유승민 전 의원은 5일 저출생 해결 공약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정치를 하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며 “공정도 그렇고 헌법정신도 그렇고 애매한 구름잡는 소리(를 한다)”라고 윤 전 총장과 최 전 원장을 싸잡아 비판했다.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는 같은 날 대선 예비후보로 등록한 뒤 기자들과 만나 “윤 전 총장은 준비가 안 된 것인지, 아니면 삶과 생각 속에 시대와 맞지 않는 낡은 생각이 꽉 들어찬 것인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또 최 전 원장에 대해선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대선후보는 출마한 다음에 공부하거나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다. 증명할 준비가 안돼 있다면 공부부터 하고 경험부터 쌓고 차후에 도전하시라”고 직격했다.

홍준표 의원도 SNS에 “한분은 하시는 발언마다 갈팡질팡 대변인 해설이 붙고 진의가 왜곡 되었다고 기자들 핑계나 대고 또 한분은 준비가 안되었다고 이해해 달라고 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유감이다”면서 “준비가 안 되셨다면 벼락치기 공부라도 하셔서 준비가 된 후에 다시 나오시라”고 가세했다.

국민의힘 경선이 ‘박힌 돌’과 ‘굴러온 돌’ 간의 우열 경쟁으로 비화하면서 과연 대통령에 필요한 자질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각종 국정 현안에 막힘 없이 발언하고, 또 불필요한 시비를 피할 수 있는 준비된 답변을 내놓기에는 ‘현역’보다 재수생, 삼수생이 더 유리하다. 그만큼 학습할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수ㆍ삼수생으로서 각종 현안마다 유창한 언변으로 자신의 정견을 피력한다고 해서 국민들이 무턱대고 그들에게 열광하지는 않는다. 대통령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은 되더라도 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권주자들 출신 전공 면에서도 이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 법률가 행정관료 경제전문가 언론인 기업경영인 등 다양하지만, 현실적으로 경제전문가가 콘텐츠 역량 면에선 가장 유리하다. 국민 생활과 관련된 각종 이슈들이 대부분 경제 문제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근로시간, 일자리, 재난지원금, 복지정책뿐 아니라 탈원전, 코로나19 방역까지 경제 이론과 직간접적으로 관련 없는 이슈가 없다. 이른바 ‘경제통’ 주자들이 각종 현안에 나름대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며 해박한 지식을 과시해 ‘콘텐츠가 가장 풍부하다’는 평가를 듣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국민들로부터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당선되고, 또 경제적으로 성공한 업적을 남길 수 있는가의 문제는 별개라는 사실은 국내외 선례가 보여준다. 1930년대 ‘뉴딜(New Deal)’ 정책을 강력 추진해 대공황 극복 동력을 만들어낸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1980년대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로 일컬어지는 신보수주의로 경제 부흥을 일으킨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모두 경제전문가 출신이 아니었다.

대통령 선거가 ‘퀴즈왕’을 뽑는 절차는 아니다. 세세한 부분까지 본인의 입장을 정리해 놓고 답변하는 것도 좋지만 미래의 현명한 결정을 위해 공란으로 비워놓는 것도 의미가 있다. 탈원전 정책을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원전 비전문가인 문재인 대통령은 2016년 12월 18일 민주당 대표 신분으로 부산 서면 한 영화관에서 ‘판도라’ 시사회를 관람한 뒤 큰 감동을 받고 “탈핵ㆍ탈원전 국가로 만들어나가자”며 2012년 대선 때부터 제기한 탈원전 공약 의지를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집권에 성공한 뒤 정책 결정 과정에서 원전 전문가들을 배제한 채 환경론자 중심으로 탈원전 정책을 수립해 밀어붙였다. 후보 시절에 섣부르게 형성된 편견과 선입견이 얼마나 큰 부작용으로 귀결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도 편향적인 정책결정 과정이란 면에선 대동소이하다.

차기 정권이 직면해야 하는 한국 현실은 촛불집회 세력과 태극기집회 세력이 양쪽에 포진한 채 좌우 진영이 갈라져 민감한 현안마다 국론 분열이 빚어지는 이념 대결 구도일 가능성이 높다. 그에 따른 막대한 사회적 비용은 국가 경쟁력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데 걸림돌이 될 게 뻔하다.

이를 감안하면, 차기 대통령은 진영 논리에 함몰된 편견에서 벗어나 찬반 의견을 두루 수렴하고, 특히 반대 의견을 최대한 설득해 가며 이견을 조정할 수 있는 ‘통합형 리더십’의 소유자이길 기대해본다. 이탈자를 최소화하며 국민 여론을 하나의 합의점으로 모아갈 수 있는, 그래서 국력을 한 곳으로 집중시킬 수 있는 포용적 리더십에 대한 원칙과 신념만 갖고 있다면 지금 ‘예상질문 답변서’를 갖고 있지 않는 비전문가라도 무방하다고 본다.


권혁식 정치부장(부국장) kwon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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