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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이재명 후보 반성문, 성숙 위한 전기인가 선거 위한 분식(粉飾)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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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11-21 06:00:12   폰트크기 변경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0일 일종의 반성문을 내놓았다. 이날 SNS에 ‘저부터 변하겠습니다. 민주당도 새로 태어나면 좋겠습니다’란 제목으로 올린 200자 원고지 6.5매 분량의 글에서 절반 정도는 민주당의 문제점, 나머지는 본인에 대한 자성과 새로운 각오를 적었다.

먼저 민주당에 대해선 “민심을 듣기 위해 전국 곳곳을 다니고 있다. 많은 분들이 여러 말씀을 해주셨지만, 그 중에서도 민주당에 대한 원망과 질책이 많이 아팠다”면서 “민주당은 날렵한 도전자의 모습으로 국민지지 속에 5년 전 대선승리를 거머쥐었고 지선과 총선을 휩쓸었지만, 이제는 고인물, 심지어 게으른 기득권이 되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고 민심의 이름으로 민주당을 비판했다.

이어 이 후보는 “당의 변방에서 정치를 해왔던 저이지만, 당의 대선후보로서 그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고 말해 은근히 본인은 이런 민주당의 문제점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을 내비쳤다.


한국갤럽이 실시한 주요정당 지지도 조사 결과. (한국갤럽 홈페이지 캡처)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11월3주(조사기간 16~18일) 정당지지도는 국민의힘 39%, 더불어민주당 29%, 무당(無黨)층 21% 등으로 나타나 국민의힘이 10% 포인트 앞서고 있다. 정당지지도에서 국민의힘이 본격적으로 우위를 달리기 시작한 것은 10월2주(〃10월 12~14일)부터였다. 당시 국민의힘이 33%로 민주당 32%를 1%포인트 차로 앞서기 시작한 이후 11월3주까지 5주째 연속 우위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10월2주 여론조사에서 이른바 ‘골든 크로스’가 일어나기 직전에 있었던 사건이 10월10일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최종 득표율 50.29%로 선출된 것이다. 민주당의 정당지지도 하락은 이 후보의 대선후보 선출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경선 직후 이낙연 후보 측의 무효표 처리 방식에 대한 이의 제기에서부터 원팀 선대위 구성 논란, 대장동 개발사업 비리 의혹 해명, 전국민재난지원금 지급 강행 추진 등에 이르기까지 이 후보가 책임질 만한 위치에서 벌어진 악재들이 복합적으로 당 지지도 하락에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이 후보 SNS 글은 마치 본인이 인기 없는 정당에 대선 후보로 선출돼 애꿎게 도매금으로 저평가되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들게 한다. 실제 그렇다면 경선 이전부터 민주당을 꿋꿋이 지켜온 민주당원 입장에선 굉장한 불쾌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제 눈 대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 티끌을 지적한다는 비판이 뒤따를 만하다. 오히려 이 후보의 정체된 지지도가 당 지지도를 끌어내리고 있는 상황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갤럽이 실시한 차기 정치지도자 선호도 조사 결과. (한국갤럽 홈페이지 캡처)


한국갤럽의 ‘차기 정치지도자 선호도’에 따르면 11월3주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후보 34%, 이재명 후보 27% 등으로 나타났다. 윤 후보가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선출된 11월5일 직전인 11월1주(〃 11월 2~4일) 조사에서 골든 크로스가 발생했다.  윤 후보는 이후 ‘컨벤션 효과’를 누렸지만, 이 후보는 그런 것 없이 지지율이 수개월째 20%대 중반 박스권에 갇혀 있다.  (여론조사와 관련된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다행히 이 후보는 뒤이어 본인의 대장동 의혹 대응 방식에 대한 반성 글을 올렸다. 그는 “왜 국민의 신뢰를 잃었는지, 제 자신부터 먼저 돌아본다”면서 “욕설 등 구설수에, 해명보다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가 먼저여야 했다. 대장동 의혹도 ‘내가 깨끗하면 됐지’ 하는 생각으로 많은 수익을 시민들께 돌려 드렸다는 부분만 강조했지, 부당이득에 대한 국민의 허탈한 마음을 읽는 데에 부족했다”라고 시인했다.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이 지난 9월13일 처음 언론을 통해 불거지고, 필자가 9월15일 본 칼럼을 통해 “이재명 후보, 대장동개발사업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했다”고 지적한 뒤 이번 반성문이 나오기까지 65일이 걸렸다. 이 후보는 본인이 아무리 개발이익 5503억원을 공공으로 환수했다고 내세우더라도 본인이 미처 인식 못한 영역에서 ‘배당금 4040억원’ 이라는 엄청난 폭리가 특정 개인들에게 돌아가 사실상 ‘눈뜬장님’ 역할을 했고, 그 때문에 국민 정서는 굉장한 위화감과 불공정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지만 그런 자각이 이뤄지기까지 두 달 넘게 걸린 셈이다.


게다가 본인이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으로 발탁했고, 나중에는 경기관광공사 사장으로까지 영전시킨 유동규 씨가 뇌물ㆍ배임 혐의로 구속됐는데도 “유동규는 측근이 아니다” “제가 사과할 일이 아니라 칭찬받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면서 꼬리자르기식, 유체이탈식 행태를 계속 보인 것도 민심 이반을 부채질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이 후보는 본인이 한번 옳다고 꽂히면 주위를 살피지 않은 성향이 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본인의 의도가 아무리 선(善)이라도 결과에선 예상치 못한 부작용과 폐단, 심지어 악(惡)을 초래할 수 있음에도 본인의 ‘선한 동기’만으로 모든 것을 재단(裁斷)하려 했고 주위 이견과 입장차, 비판 등에는 아예 귀를 닫아버리는 것이다. 한편으론 정중지와 (井中之蛙)를 연상시키지만, 나쁘게 보면 독선(獨善)이다.


다행히 국민 여론을 의식해야 하는 대선을 앞둔 상황이어서 지금이라도 반성문이 나왔지만, 그게 아니었다면 끝까지 그런 자각에 이르지 못하고 본인의 정치 권력이 바닥이 날 때까지 밀어붙였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독재(獨裁)로 귀결된다.

지난 18일, 논란 20일만에 스스로 철회한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문제도 이런 우려를 뒷받침한다. 이 후보는 본인 제안에 아군(我軍)이라고 할 수 있는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김부겸 국무총리가 ‘재정 여건 상 곤란하다’며 수차례 난색을 표했지만, “부자 나라에 가난한 국민이 온당한 일이냐” “정책 결정 집행자들이 따뜻한 방안 책상에서 정책 결정을 한다”며 기재부 입장을 불온시 내지는 적대시했고 심지어 ‘기재부 해체론’까지 거론하며 총구를 옆으로 돌렸다. 본인이 스스로 강점으로 내세우는 추진력을 바탕으로 만약 청와대 집무실에서 이번 재난지원금을 밀어붙였다면, 영락없이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정책 또는 탈원전정책의 후속판이 됐을 것이다.

이 후보는 SNS 글 말미에 “저부터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 그 마음으로 돌아가 새로 시작하겠다”고 초심의 각오를 밝힌 뒤 “저의 이 절박한 마음처럼 우리 민주당도 확 바뀌면 좋겠다. 주권자를 진정 두려워하고 국민의 작은 숨소리에조차 기민하게 반응하는 길을 찾아내면 좋겠다”고 민주당에 주문했다.


여전히 본인보다 민주당에 더 많은 책임을 지우고 더 많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지만, 아무튼 후보 본인도 독선의 늪에 빠지지 말고 국민 여론에 귀를 더 여는 자세가 요구된다.


이번 반성문을 계기로 이 후보가 한 단계 성숙해 숲을 볼 수 있는, 균형감 있는 정치인으로 도약하는 전기가 마련될 것인지, 아니면 선거를 의식한 분식(粉飾) 행위에 그칠 것인지는 100일 넘게 남은 대선기간 동안 국민이 예의주시하면서 현명하게 판단할 것이다.


권혁식 정치부장(부국장) kwon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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