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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그릇의 차이, 연륜의 차이, 그리고 품성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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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12-28 11:25:16   폰트크기 변경      

초등학교 반장 선거를 하게 되면 후보 학생들은 단상에 올라가 저마다 본인이 학급 성적을 1위로, 또는 운동회 성적을 1위로 만들 적임자라고 외치면서 지지를 호소한다. 선거 결과 승자는 ‘1등’ 약속을 지키려 최선을 다하겠지만 패자는 입장이 애매해진다.


자신이 1등 달성 적임자라고 주장했는데, 경쟁자가 반장이 돼서 1등을 성취하게 되면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반원들 선택이 현명했음을 방증하게 된다. 때문에 내심으론 차라리 학급이 1등을 못해서 본인을 택하지 않은 반원들이 늦게라도 후회하길 바라는 마음이 없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1등 달성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비겁한 행위이며 일종의 게임을 불공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패자들은 대개 한발 뒤로 물러나 승자의 과업 수행을 지켜보면서 결과를 기다리는 ‘소극적’ 내지는 ‘냉소적’ 입장에 빠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물론 패자의 그릇이 크다면 승자를 도와 1등 성취를 위한 노력에 힘을 보탤 수도 있겠지만 쉽지는 않다. 대의를 앞세운다면 답은 쉽게 나오지만, 대개 득실 계산에 머뭇거리게 된다. 그렇더라도, 노골적으로 승자에 대한 앙금을 드러내며 1등을 방해하는 행위는 초등학생들도 꺼린다.

대선후보 경선도 초등학교 반장 선거와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다. 대외 경쟁을 위해 내부적으로 적임자를 뽑는 과정이란 점에서 공통적이다. 선거 후유증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작금의 대선 국면에서 눈에 띄는 장면은 양측의 경선 후유증이 서로 대조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여당 경선의 패자인 이낙연 전 대표는 27일 국가비전국민통합위원회 출범을 계기로 이재명 후보 당선을 위한 조력자로 본격 나섰다. 직전까지만해도 거의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으며 ‘인지상정’의 모습을 보였던 것에서 ‘큰그릇’의 길로 접어든 셈이다.

반면, 야당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 유승민 전 의원은 선대위에서 한발 물러나 ‘보통사람’으로 남아있다. 본인 거취에 따른 변수 없이 대선이 어떻게 귀결되는지 지켜보려는 태도로 비춰진다.


홍준표 의원은 초등학생들도 꺼리는 선을 넘나들고 있다. 홍 의원은 지난 16일 페이스북 글에서 “여야 후보 본인과 가족 비리가 서로 물고 물리는, 범죄 혐의자들끼리의 역대급 비리 대선이 진행되고 있다”고 여야 후보를 싸잡아 비난했다. 지난 14일 온라인 커뮤니티 ‘청문홍답’에선 ‘(윤석열 후보 배우자) 김건희 씨 과거 행적이 심각하다’라는 지적에 “만약 결혼 전 일이라고 모두 납득된다면 공직 전에 있었던 이재명 전과 4범은 모두 용서해야 하느냐”고 윤 후보와 김 씨를 겨냥했다. 그릇의 차이다.

공교롭게도 여야 당대표들도 패자들 처신과 닮은 데가 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이재명 후보 선출 이후 특유의 존재감이 거의 사라졌다. 상대를 몰아붙일 때는 사자후(獅子吼)를 토해내는 송 대표가 이 후보 앞에선 양처럼 순해졌다.


주요 사안에선 이 후보와 보조를 맞추려고 애쓴다. 한때 해프닝으로 끝난 전국민재난지원금 추가 지급 문제와 관련, 이 후보가 처음 제기하고 기획재정부가 반대 입장으로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송 대표는 기획재정부를 향해 “국민들한테 25만∼30만원을 주는 것을 벌벌 떨면 되겠느냐”고 몰아붙이며 거들었다. 결국 이 후보가 철회하면서 송 대표도 멋쩍게 됐지만, 부창부수를 연상시킬 정도로 대의에 충실하다.

반면 야당의 이준석 대표는 너무 다르다. 윤석열 후보가 27일 “제3자적 논평가나 평론가가 돼서는 곤란하다”고 말하자 “당대표 제언이 평론 취급받을 정도면 언로는 막혔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되받았다. 연륜(年輪)의 차이든지, 아니면 경륜(經綸)의 차이일 것이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했는데, 작금 한국정치의 보수는 진보 진영보다 더 분열적이다. 여야의 대조적인 모습이 새로운 격언을 만들어낼 진영 문화의 진화 단서로 봐야할지, 아니면 개인적인 품성의 문제로 치부해야 할지, 아무튼 연구대상이다.

권혁식 정치부장(부국장)kwon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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