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치레 한번 심하게 하지 않던 그였는데 췌장암 말기 선고를 받았다. 처음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는 문제없이 이겨낼 수 있다며, 의연한 태도를 보이곤 했다. 한데 날이 가도 병세는 호전될 기미가 없이 점점 깊어져만 갔다.
회갑을 갓 넘은 나이, 언제 숨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거다. 병실에 들어서니 그의 눈빛은 처연하기 짝이 없다. 전의 당당한 모습은 간데없고 꺼져가는 퀭한 눈만 하얗게 남아 있다. 허공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입을 움찔거린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귀를 가까이 기울여보지만 입안에서 맴돌기만 할 뿐, 뱉어낼 힘이 없는 모양이다. 삭정이 같은 육신은 삭아 내리고 떼꾼한 눈마저도 아득할 따름이다. 오랫동안 함께 부대끼며 산 처지인데도 갑자기 그가 왠지 낯선 사람만 같다.
누구든 태어난 그 날부터 한 걸음씩 죽어간다지만, 그야말로 절박한 벼랑에 아득히 서 있다. 생의 단독자로서 떨어져 가야 할 저편, 숨이 막힐 것만 같다. 그의 눈 속은 울음 빛이 그렁그렁하다. 상실감이 밀려와 더는 바라볼 수가 없다. 그 눈빛을 뒤로하고 병실 밖으로 나오고 만다. 숨을 몰아쉬며 문밖에서 서성대기를 십여 분, 그예 방에선 울음이 터져 나온다. 병실 복도에 얼어붙은 채 못 박히고 만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싸늘한 자책, 가슴속에서 무언가 쑤욱 빠져나가는 것만 같다.
일순간의 일이다. 그의 공허한 눈 속에 다순 눈빛을 섞어 다독여 주었더라면….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그 순간을 곁에서 함께하지 못한 게 맷돌이 돼 가슴에 무겁게 얹혀 있다. 때를 놓치면 한이 맺힌다는 것을 왜 분별하지 못했을까. 꽃철은 다가오는데, 낙엽 돼 또 한 사람이 저편으로 떠나간다. 모든 일과 분별엔 다 때가 있다. 앞으론 때를 놓쳐 후회하지 않도록 회다짐하고 있다.
정태헌(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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