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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전화기 뒀다 뭐 할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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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04-10 17:14:37   폰트크기 변경      

니는 우째 내가 먼저 전화 안 하마 소식이 없노. 전화기를 열자마자 나는 혼이 난다. 으으 글체. 니가 요래 먼저 전화 해주마 됐제. 맞다. 건강하나. 건강하거래이. 내용도 없는, 아니 어쩌면 가장 푸근하게 수다를 떨다 우리는 전화기를 닫는다. 내 무심과 게으름을 일깨워 주는 고마운 동무. 잊을만하면 불러주는 다정한 사람.

나는 믿음이 클수록 무심한 편이다. 언제나 내 자리에 내가 있듯, 내 벗들도 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 믿는다. 어쩌다 보이면 반갑고 안보여도 잘 지내고 있겠거니 여긴다. 그러다 느닷없이 부르면 달려가 웃고 떠들다 온다. 언제 만나도 그간의 공백을 느낄 수 없는 관계.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굳게 믿어도 틀리지 않는 인연.

찹쌀떡 한 상자가 왔다. 아득한 이름이다. 40여 년 전부터 이어진 인연이다. 너무 오래 잊고 지냈다. 웬 떡일까? 집안에 경사가 생겼나. 내 신간이 나왔단 소식을 들었나. 뜻밖에 들이닥친 떡보따리를 안고 나는 수십 년 전 기억들을 불러낸다. 먹먹하다. 반갑고, 고맙고, 그리운, 큰 언니 같은 분. 내가 너무 오래 무심했구나. 갑자기 마음이 바쁘다.

‘삶을 돌아보며 정리하다가 생각이 났지, 혹시 무슨 일로 내가 서운하게 해서 연락을 끊었나 싶어.’ 목소리에 서운함이 묻어있다. 그럴 리 없다고, 굳이 변명하자면 힘든 시간을 지나며 주저앉는 나를 일으켜 세우느라 둘러보지 못한 인연이 한 둘이 아니라고. 하지만 오해도 섭섭한 마음도 나에 대한 관심이고 기대아닌가. 고맙다.

찰떡 하나 물고 커튼을 젖힌다. 건너편 빈집이 구구구 살아난다. 비둘기 천지다. 날개를 퍼덕거리는 놈. 막 날아와 접는 놈. 고개를 갸웃거리는 놈. 녹슨 기와들 사이 이끼를 쪼는 놈. 사는 일이 금 간 지붕이다. 바람 속으로 무너지는 꽃사태다. 이 봄도 금방이다. 이 해도 금방이다. 자주 좀 안부를 묻자. 전화기 뒀다 뭐 할라고. 손가락은 뒀다 뭐할라고.

권애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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