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木蓮), 나무에 핀 연꽃이다. 겨우내 찬바람 속에서 얼마나 바장거렸을까. 꽃눈 겉에는 갈색의 긴 털이 촘촘히 덮여 있다. 추위를 견뎌내도록 미리 설계해 두었는가. 겨우내 달고 있던 화살촉 모양의 회갈색 눈은 굵고 튼실한 줄기에 매달려 봄을 기약했겠지.
이를 두고 옛 선비들은 나무 붓을 연상하여 목필(木筆)이라 했다. 붓 같은 두 개의 턱잎과 잎자루가 서로 합쳐져 변형된 봉오리이다. 봉오리가 맺힐 즈음 저마다 북쪽을 향한다. 북향화(北向花), 따뜻한 햇볕이 봉오리 아랫부분에 먼저 닿으면서 세포분열이 반대편보다 더 빨리 이루어진 까닭이다.
봉오리는 차차 등불 켜듯 꽃잎을 천천히 연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한껏 꽃을 피워내는 목련, 그 속에서 흰 비둘기가 한 마리씩 날아오를 것만 같다. 맵고 짠 시절을 이겨낸 선물이요 인고로 피워낸 영혼의 불침번이다. 충만으로 가득하고 향기로 드높으며 지고(至高)로 우뚝하다.
아까워라. 붕대를 푼 목련 꽃송이는 몸을 곧 부리겠지. 예닐곱 날이 지나면 속절없이 낙화를 시작할 터이다. 남루하고 참혹하게 통증을 치러낼 것이다. 질긴 고통을 다 바친 후, 지친 꽃잎은 시부적시부적 무겁게 떨어뜨리기 시작하겠지. 하늘 향해 눈부신 꽃잎을 펼치며 산 모진 대가를 치러야 하리라.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짧은 날들일지언정 순백의 자존을 누렸으면 낙화의 숙명을 짊어질 수밖에 없다.
고아한 꽃들을 속절없이 떨구리라. 나무 밑엔 떨어진 꽃잎들이 수북할 테다. 저 그늘에서 실컷 울고들 가겠구나. 눈물이 흥건하겠다. 하나 후락한 꽃을 벗고 쇄락한 새잎으로 갈아입은 후, 새 생명으로 거듭나려는 또 다른 몸짓이리라. 목련을 바라보며 순환의 질서를 생각한다. 오면 가고, 피면 지며, 오르면 내려오는 게 지극한 자연의 섭리임을. 어찌 저 목련뿐이랴.
정태헌(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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