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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 숨은 맛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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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05-08 10:44:58   폰트크기 변경      

누가 빵 봉지를 들려줬다. ‘소금빵’이라고 한다. 처음 듣는 이름이다. 살찐 번데기 같이 주름이 잡힌 빵의 등에 하얀 소금 알갱이가 여러 개 붙어 있다. 막 식사를 한 뒤에 받은 선물이라 냉장고에 넣어두곤 잊었다. 며칠 뒤 빵 봉지를 발견하고 살짝 데워 먹어보니 짭짤한 소금 맛 뒤로 고소함이 깊다. 씹을수록 끌리는 맛이 어떤 빵보다 매력적이다.

나는 평소 원재료의 맛을 그대로 살려 먹는 걸 좋아한다. 어떤 재료든 이것저것 섞거나 과하게 양념을 하지 않는다. 생으로든, 데치거나 삶거나 찌든, 주재료가 지닌 맛을 살리려 한다. 식탁은 항상 소박하다. 끼니마다 과하게 차리지도 요리에 크게 시간을 들이지도 않는다. 찬의 종류가 많지 않으니 몇 개 안 되는 그릇들을 설거지하기도 쉽다.

먹는 일뿐만 아니다. 매사가 그렇다. 소박한 것에서 오히려 깊은 맛이 우러난다. 묵화는 먹물 하나로 얕고 깊고 멀고 가까운 것은 물론 고요하고 흔들리는 감정까지 살려낸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화폭 속 사물에서 다양한 빛과 색은 물론 소리까지 은은하게 퍼진다. 고수가 아니고는 살려내기 쉽지 않은 그림이다. 단순하지만 넓고 깊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지만 화려할수록 속빈 강정 같을 때도 있다. 치장을 많이 할수록 본래의 아름다움은 사라진다. 진짜 멋쟁이는 크게 꾸미지 않는다. 자신의 본 모습을 살리면 뜻밖에 깊은 멋이 드러나게 된다. 양념이 진하면 본래의 맛이 안 나듯 걸친 것들이 화려하면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주와 부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음식이든 삶이든 최소한의 양념으로 본래의 맛을 살리는 게 좋다. 쓴 것은 쓴 그대로, 신 것은 신 그대로, 밍밍한 것은 밍밍한 그대로. 굳이 그 본래의 것을 없애기 위해 다른 것들로 덮을 필요가 있을까. 실은 본래 속에 이미 웬만한 것들은 다 들어 있다. 그 숨은 맛과 멋을 찾아낼 줄 아는 당신, 삶의 진정한 고수이며 달인이다.

권애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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