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 비용 계상 없이 안전관리 요건↑
추정도급액 현 71억→90억 예상
전공 보유기간·관할 소재기간 배점도 상향
현 880여 업체 지각변동 전망
그래픽:e대한경제 |
[e대한경제=김진후 기자] 연간 3조원에 육박하는 배전공사 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발주처인 한국전력공사(한전)가 배전공사에 참여할 수 있는 입찰 기준을 대폭 강화하면서 기존 900여개 배전공사업체 가운데 탈락사가 속출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한전은 배전공사업체의 인력ㆍ장비 기준만 높여놓은 채 추가비용을 입찰가격에 반영하지 않아 빈축을 사고 있다.
9일 전기공사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오는 11월 공고 예정인 2023~2024년 배전공사 입찰을 위해 운영기준 및 적격심사기준 개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기준 개정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고, 오는 7월까지 기준안을 확정해 11월 입찰에 곧바로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해당 기준을 충족한 ‘배전공사 전문회사’는 계약기간인 2년간 해당 한전 사업소로부터 8000만원 이하 소액공사에 대해 시공통보를 받고 이를 책임 시공한다. 낙찰 업체는 입찰 당시 추정도급액에 따라 시공실적과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현재 배전공사 전문회사는 △고압 471곳 △지중 17곳 △저압 390곳 등 총 878곳이다. 이들은 2020년 기준 19만5123건, 총 2조8651억원 규모의 배전공사를 나눠 수행했다.
새 기준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5개월 만에 배전공사업체들이 해당 조건을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한전이 배전공사업계와 충분한 숙의 과정없이 개정안을 몰아붙이면서 업계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안전 강화’라는 한전의 명분에도 불구하고 결국 배전공사업계에 비용을 떠넘기고, 공사업체 수를 줄이려는 이른바 ‘솎아내기’로 귀결될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전기공사업계 관계자는 “현재 논의 중인 개정안은 안전을 빌미로 업계 현실과 의견을 철저히 외면한 것”이라며, “강화된 기준을 강행할 경우 다수업체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일감을 잃거나 손실을 감수하고 공사를 해야 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배전공사 새 입찰기준은 안전관리 보조원 필수인력화를 비롯해 △추정도급액 상향 △계약 2년 연장(상위 30%) △공사 기자재 필수보유수량 변경 △유자격 전공 보유기간 축소(10년→5년) △관할지역 소재지 기간 배점 변경(12개월→24개월) 등이 골자다.
이 가운데 시공관리 책임자 및 안전관리 보조원을 필수 보유인력으로 포함하는 내용이 논란이 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각 공사현장의 인력 배치를 의무화하고, 배전공사 전문회사들이 이를 이행할 경우 내년 전격심사에 가점을 주겠다는 것이다.
전기공사업계는 배전공사업체들이 대부분이 영세하다는 점을 들어 난색을 표하고 있다. 대기업들도 신규 충원에 애를 먹고 있는 안전관리 인력을 중소업체들이 단기간에 채용하기 어려운 데다, 2년의 계약기간 동안 인력을 유지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배전공사업체들이 유동적으로 운용ㆍ보유하던 차량 및 기자재를 필수 보유하는 방안이 기준안에 포함된 것도 논란거리다. 기준안에 따르면 업체별로 대당 2억원에 이르는 활선 바켓트럭(전력복구용 사다리차)을 최소 3대씩 보유해야 하고 간접활선공구 2세트, 오거트레인·카고트레인 등도 각 2대씩 보유해야 한다.
한국전기공사협회 관계자는 “촉박한 입찰 일정을 앞두고 경기규칙(적격심사 기준)을 대폭 바꾸고, 안전과 직접 관련없는 기준까지 변경하려는 한전의 정책에 대해 회원사들의 민원이 폭주하고 있다”며, “연명서를 받아 한전 측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전 관계자는 “현재 기준안이 최종안은 아니다”라면서도, “인명사고 방지를 위해 안전 요건 및 기준 강화는 불가피하다”고 반박했다.
김진후기자 jhkim@
〈ⓒ e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