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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민주주의와 그 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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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05-16 05:01:04   폰트크기 변경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를 외치며 독재정권에 항거했던 김지하 시인이 지난 8일 향년 81세로 별세했다.

이 시는 1975년에 발표된 저항시로, ‘한국적 민주주의’ 란 이름으로 개인의 자유와 기본권이 질식당하던 유신체제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노래한 민주화운동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된다.

당시 고인의 나이 34세. 4년 뒤 유신체제가 종말을 고했다. 이후 80년대 신군부 독재를 거쳐 90년대 군인이 아닌 일반인이 집권한 YS ‘문민정부’, 투표에 의해 정권교체를 이룬 DJ ‘국민의정부’를 지나 좌파와 우파 진영이 각각 두 차례 집권하기까지 근 50년간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정착되는 과정을 지켜본 고인으로선 젊은 날 옥고를 감수하며 갈망했던 민주주의 모습과 현실 속의 그것이 얼마나 동질적이라고 생각했을지 궁금하다.

민주(民主)의 일차적 의미는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10일 취임사에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할 것”을 다짐하며 그 뜻을 되새긴 바 있다.


실제로 인류 근현대사는 국가 권력의 주체가 삼각형의 꼭대기인 1인 군주에서 밑변인 다수 국민 쪽으로 꾸준히 내려오는, 이른바 민주화 과정을 밟아왔다. 그 결과 민주주의는 현대 정치 이념 가운데 최고선으로 자리매김했고, 누구도 그 가치의 중요성과 정당성을 부인하기 어렵게 됐다.


다만, 고대 아테네 같은 도시국가가 아니고선 모든 국민이 정책결정 과정에 매번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될 수는 없다는 게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태생적 한계다. 때문에 대다수 국가에선 차선책으로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뽑아 권력을 위임하는 대의민주주의가 시행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문제는 국민에 의해 대표로 뽑힌 대리인들이 국민 뜻과 무관하게 본인들 독단적인 판단에 따라 권력을 행사하는 사례가 좌파 정권에서도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첫 민주 정부’라고 했던 김대중 정부에서부터 노무현 정부,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민주당 계열 정부 3기 동안 권력자들이 ‘민주’의 이름값을 하며 우파와 차별되는 민주주의 실천 의지를 보여줬던가하는 물음에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그들도 선거 때만 되면 잠시 유권자들 표심을 훔쳐 권력을 쥐는 데 급급했을 뿐, 일단 권좌에 오르면 국민 대리인으로서 신분을 망각하고 엘리트주의에 사로잡힌 언행이 다반사였다는 점에서 우파와 별로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국민의정부에서 벌어진 대북송금 사건, 참여정부에서 추진된 전시작전통제권 조기환수 시도, 문재인정부의 탈원전정책 등이 그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게다가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침몰하는 배에서 귀중품을 챙기듯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처리도 그런 폐습의 연장선에 있다. 70여년간 유지돼온 형사사법체계를 바닥에서부터 뒤집는 중대사를 놓고 국민의 뜻을 물어보는 입법 공청회나 토론회 한번 열지 않고 일사천리로 강행처리에 나섰던 것은 한때 권력을 공유했던 동지들의 정치적 안전을 확보해야한다는 절박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검찰 수사권이 축소될 경우 사회적 약자를 비롯한 많은 국민들에게 피해가 우려된다는 전문가들 숱한 지적에도 아랑곳하지않고 본인들에게 한정된 특수이익을 위해 위임받은 권력을 남용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를 껍데기로 만들어버린 일탈로 기록될 것이다.

대의민주주의에서 대리인이 주인과 따로 노는 현상은 찰리 채플린이 ‘모던 타임즈’에서 고발하고자 했던 ‘인간 소외’를 연상시킨다. ‘인간이 만든 생산물이 인간으로부터 분리돼 자립하면서 인간에게 낯선 존재가 되고 나아가 인간을 억압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현상’을 지적했던 마르크스주의 ‘소외’ 개념에서, 인간과 생산물을 ‘국민’과 ‘정치인’으로 치환하면 둘은 판박이다. ‘국민 소외’인 것이다. 586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젊은 시절 이념서적을 탐독하면서 비판적으로 이해했을 소외 구조에 어느덧 본인들도 한 축을 지탱하고 있는 셈이다.

6·1 지방선거가 보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출마자들은 누구도 예외 없이 유권자들을 주인으로 떠받드는 성실한 일꾼을 자임하며 지지를 호소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본뜻은 인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뒷간 갈 적 마음 다르고 올 적 마음 다른 게 인지상정이다 보니, 약속을 지키고 초심을 잃지 않을 정치인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래도 옥석을 구분하며 적임자를 찾아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주권자 역할에 충실하고자 할 때, 반세기 전 어느 젊은 시인이 갈구했던 민주주의의 참모습에 한발 더 다가가는 밑거름이 되리라 믿는다. 


권혁식 정치부장(부국장) kwon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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