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대한경제=김진후 기자] 한국전력공사와 전기공사업체들 사이에 냉랭한 기류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한전이 올 연말 있을 ‘2023~2024년 배전공사 입찰’을 앞두고 급작스럽게 운영기준 등을 강화·개정하면서 한전 배전계획처와 업계 간 줄다리기가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배전공사 입찰기준을 전반적으로 깐깐하게 바꾼 내용도 문제지만, 규정을 크게 흔들면서 정작 업계와 이럴다 할 협의조차 없이 밀어붙였다는 점이 논란이 되고 있다. 업계에선 말이 좋아 ‘줄다리기’지, 발주처 고유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한전을 상대로 배짱 좋게 반대 의견을 내는 배전업체를 찾긴 힘들다고 토로한다.
김진후 건설기술부 기자 |
한전은 배전이 필요한 사업지를 발굴하고 이를 발주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를 수주하는 것은 전기공사업체, 그 중에서도 배전 전문회사의 몫이다. 배전업체는 전체 전기공사업체 1만9000여개사 중 4000여개사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문제는 이번처럼 기준안이 요동칠 때마다 수천여개사가 조직 ‘세팅’을 다시 해야 한다는 점이다. 실질적으로 공사를 수주할 수 있는 상위 700~800개사 안에 들기 위해선 기술자를 더 뽑고 새 장비를 사야 하는 등 투자를 해야 한다. 관련 전공자를 확보하기 위해 연봉을 올리거나 군소업체와 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우는 이유다. 이런 ‘투자’를 하려면 예측 가능성이 중요하다.
한전도 배전공사 입찰기준을 바꿀만한 ‘명분’이 있다. 개정 기준은 안전관리 보조원 의무 보유, 안전장비 확보 의무화, 사고 시 벌점 또는 계약 해지와 같은 안전사항 강화에 방점을 뒀다. 수년간 배전공사에서 발생한 중대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고심한 결과물이다.
하지만 기업들이 새 기준을 맞추려면 단기간에 투자를 해야 한다. 당장 시행 5개월여를 앞두고 입찰기준을 꿰맞추려면 과부하가 불가피하다. 평상심을 잃은 수요와 공급은 관련 인력과 장비의 시장가격을 끌어올리기 마련이고, 영세업체일수록 치열한 경쟁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높다.
‘안전 강화’만큼 ‘상생’도 놓칠 수 없는 시대정신이다. 과거에도 저압 배전공사 업체는 법적 근거 부족으로 안전관리비 지급대상에서 소외돼 온 전례가 있다. 관련 법이 꾸준한 의견 개진으로 저압 배전업체를 끌어안았듯, 한전의 개정안도 배전업계와의 상생까지 챙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진후기자 jh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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