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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진창에 빠진 한국정치와 ‘작은 흙덩이’도 사양 않는 통합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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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09-13 06:00:47   폰트크기 변경      

한국 정치가 진창에 빠졌다. 여야가 무릎까지 오는 진흙탕에 발이 빠져 수개월째 빠져나올 기미조차 못 보여주고 있다. 현대처럼 다원화된 사회에선 복잡다기한 이해관계를 조정해 공동의 목표를 정립하고 국민 역량을 한데 모아 국가 이익과 국민 행복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내는 게 정치 리더십의 본분이라고 할 것이다. 더욱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물가 환율 금리 등 각종 지표가 흔들리고 삼각파고가 밀려오는 경제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선 어느 때보다 국민을 한데 뭉치게 하는 정치 리더십이 절실하다.

정치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새로 출범한 보수 정권이 자기 정체성에 바탕을 둔 개혁정책을 제시하고, 그에 따라 국회가 여당 주도로 정책에 법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입법에 나서고 소요 예산을 통과시켜 추진력을 만들어주는 게 정상일 것이다. 설사 여소야대 정국에서 여당의 입법 노력이 한계에 부닥친다면 여당에 우호적인 국민 여론을 끌어들여 야당의 등을 떠미는 힘을 만들어내고, 막판에는 적절한 반대급부를 야당에 주고 여당 법안을 통과시켜주는 타협 정치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도 인수위 활동을 마치면서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 첫 시정연설에서 연금 노동 교육 분야를 3대 개혁과제로 제시했다. 국민의힘도  정기국회에 들어서면서 이를 뒷받침할 100대 입법과제를 발표했다. 여야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다면, 여권이 새 정부 임기 초반의 국정 동력을 바탕으로 경제성장과 위기극복을 위한 정책 과제를 내놓고 야당과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입장차를 좁혀가며 국민 여론을 가운데로 모아가는 장면을 국민들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의 정상작동을 위한 여러 기제는 하나같이 고장(故障) 상태에 가깝다. 대통령 부인의 과거 및 최근 행적은 상대 진영의 조준사격 사정권에서 벗어나질 못해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을 내리누르는 악재가 되고 있고, 여당은 전 대표의 잇단 가처분신청으로 공도동망(共倒同亡)의 길을 재촉하고 있다. 여야 관계도 야당 대표 기소를 계기로 끝을 알 수 없는 대결의 터널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런 혼전은 여야 정당지지도가 각각 20%대 후반에서 맴돌며 ‘도토리 키 재기’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고, ‘지지정당 없는’ 무당파가 40%에 육박하는 기현상으로 이어져 국민들의 정치혐오를 방증하고 있다.

이런 진창에서 여야는 어떻게  빠져나올 것인가. 내홍에 시달리는 여당의 운명은 어느 손을 들어줄지 가늠할 수 없는 재판부 판단에 달렸고, 대통령 부인의 ‘사법 리스크’는 특검법안까지 발의돼 야당의 여론전 먹잇감 신세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실정이다. 야당 대표를 겨냥해 뽑은 검(劍)은 지켜보는 관중들이 많아 무라도 잘라야할 판이라고 한다면, 야당의 극렬한 저항과 국회 파행은 불을 보듯 뻔하다. 국민 여론은 전 정권에서 터전을 잡은 좌파 논객들이 보수정권 출범 이후에도 방송계 기득권을 지키고 있는 덕분에 웬만해선 흐름을 바꿔놓기도 힘들다. 여야가 유불리를 떠나 꼼짝달싹하질 못하는 수렁에 빠져 있는 사이에 야당의 ‘국정 발목잡기’보다는 여당의 ‘무기력’과 ‘정치력 부재’가 더 부각돼 입길에 오르내리는 게 현실이다.

국정을 이끌어갈 책임이 있는 여권으로서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면, 현재로선 ‘국민통합 리더십’이 유력한 대안으로 꼽힌다. 이른바 ‘내부총질’을 계속하고 있는 전 대표도 다시 끌어안아야 하고, 기소된 야당 대표도 재판정에 가기 전에 악수를 청해 대화와 협상의 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흐지부지되는 사법정의에 대한 불만으로 지지층 내부에서 역풍이 불 수도 있겠지만, 전례 없는 복합 위기에 직면해 국내 문제는 일단 접어두고 위기 극복에 국가 역량을 모을 것을 호소한다면 국민 이해를 구할 수 있는 명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강경론자들에게는 부처님 염불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최선책’에 집착하기에는 자책골이 너무 많았고 임기 5년도 길지 않다.

중국 전국시대 진나라 왕이 간첩사건을 계기로 타국에서 영입된 관리들을 나라밖으로 내쫓는 ‘축객령(逐客令)’을 내렸을 때 초나라 출신 이사(李斯)가 진왕에게 올린 ‘간축객서(諫逐客書)’는 통합의 리더십이 갖는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명문장으로 손꼽힌다.


‘태산(泰山)은 작은 흙덩이도 사양하지 않기에 그 거대함을 이룰 수 있고, 강바다(河海)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기에 그처럼 깊어질 수 있고, 왕은 백성들을 물리치지 않기에 그 덕을 밝힐 수 있다.’


이사가 자기 구명을 위해 쓴 글이지만, 이를 받아들인 진왕은 이로부터 16년 뒤 중국 대륙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으로 거듭날 수 있는 원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현 정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야가 어깨를 겯고 진창에서 빠져나오라. 


권혁식 정치부장(부국장) kwon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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