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희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 |
우리나라 대부분 사업장은 안전에 얼마나 많은 신경을 쓰느냐와 관계없이 규정과 처벌에 기초한 안전관리를 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즉, 관련 법에 기초해 안전 규정을 만들고, 작업자들의 준수 여부를 감시하고, 위반 시 처벌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작업자들이 규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규정이 안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지, 규정을 지킬 수 있는 현장 조건이 갖춰져 있는지, 규정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우리가 너무나도 자주 봐온 것처럼, 사고 후 당국이 수백 개의 위반사항을 적발해 처벌하고, 얼마 안 가 또 비슷한 사고가 나는 참혹한 현실이다.
그렇다고 기업만을 탓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사업장 안전을 관리하는 정부가 규정과 처벌의 원칙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안전보건을 다루는 산업안전보건법령은 위험 예방을 위한 수많은 세부 규정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안전보건규칙 제32조는 높이와 깊이가 2미터 이상으로 추락 위험이 있는 경우 사업주가 작업자에게 안전대를 제공하라고 규정한다. 문제는 이러한 세부 규정이 아무리 많아도 작업장의 ‘모든’ 위험을 예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 심각하게, 규정과 처벌 위주의 관리는 사람들을 ‘안 걸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게 만든다. 특히, 규정을 지킬 여건이 안 되는데 지키라고만 하는 경우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기 쉽다. 결국, 사람들은 안전하기 위해 규정을 지키는 게 아니라, 처벌을 받지 않으려고 규정을 ‘지키는 척’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결국은 정부의 안전정책에 대한 불신과 냉소로 이어져 왔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수많은 안전 전문가들은 사업장의 경영자, 관리자, 그리고 작업자들이 안전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이를 실천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 즉, 긍정적인 안전문화를 조성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물론 안전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경영진이 진심으로 안전을 중요하게 여기고 이를 실천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분명히 가능하다. 결국, 조직 구성원들은 위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느냐에 따라 행동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중대재해처벌법이 필요한 이유다.
물론 기업들이 안전문화 중심의 안전관리를 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안전관리 방식이 변해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기업이 안전문화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이를 조성할수록 있도록 기업을 지원하는 것이다. 위험요인과 예방조치는 처벌을 위한 ‘규정’이 아니라 ‘정보’로서 기업에 제공해야 한다. 마침 정부가 10월에 발표할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통해 새로운 산업안전 패러다임을 제시하겠다고 하는데, 규제와 처벌이 아닌, 공감과 지원을 통한 안전문화 확산이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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