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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주로 칼럼] ‘소통(疏通)령’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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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11-29 06:00:13   폰트크기 변경      

[대한경제=조성아 기자] 며칠 전 저녁 친한 교수님이 주최한 한 경영인 모임에 갔다. 그날 강연 주제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우린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나’였다. 반복되는 정치인들의 말싸움을 지켜봐야 하는 일을 하고 있기에 사석에선 가능하면 정치 얘기를 피하는 편이다. 결론이 쉬이 나지 않는 주제이기도 하거니와. 그날도 난 나보다 인생을 많이 살아온 각계 선배님들의 ‘행복’에 대한 경험과 의견을 듣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강연 주제와 달리 논쟁의 소재로 등장한 이는 어김없이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정확히는 얼마 전 대통령이 ‘도어스테핑’에서 MBC 기자와 논쟁을 벌인 일에 대해서였다. 담소로 시작된 대화는 결국 치열한 논쟁으로 번져갔다.

논쟁의 포인트는 윤 대통령이 정말 ‘바이든’을 언급했는지, 아니면 ‘비속어 파문’ 이후 MBC 기자에 대한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 조치가 적절했는지, 그것도 아니면 대통령실 가림막 설치가 도어스테핑 취지에 어울리는지 등이 아니었다. MBC 기자가 ‘슬리퍼를 신고 대통령 뒤통수에 대고 소리 지른 일’로 (그 자리에선 암묵적으로) 단정 지어진 그 ‘한 장면’에 대해서였다.

그 일에 대해 ‘기자로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한 중견기업 대표님의 질문이 있기까지, 난 그저 듣고만 있었다. 이미 내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었다. 내게 질문을 던진 분은 내가 입을 열기도 전 “감히 대통령 등 뒤에다 그렇게 따질 수 있느냐”며 언성을 높였다. 나의 대답은 ‘같은 기자로서 편 든다’는 오해를 사기 십상이었다.

정치적 편향성이 있는 언론은 바람직하지 않다. 언론은 여야를 떠나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 어느 곳을 향해서든 비판하고 감시해야 하고, ‘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실의 대응 방식은 언론이 비판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에 가깝다. 대통령실은 그날의 언쟁 때문이 아니라고 하나, 결과적으로 그 일 이후 도어스테핑을 중단한 것은 세련되지 않다.

이 모든 소모적 논쟁의 본질은 무엇이었나. 그럼에도 대통령이 입 밖으로 냈던 단어가 무엇이었는지 더는 중요치 않게 됐다. 남은 건 그 일로 인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결론도 나지 않을 말싸움뿐이다. ‘비속어 논란’ 직후 대통령이 직접 나서 “바이든이라고 하진 않았지만(그것이 사실과 다른지언정) 말실수를 한 것은 사실이다.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만 했더라면, 여파가 이렇게까지 커지진 않았을 것이다.

기자와 언쟁을 벌인 이기정 대통령실 홍보기획비서관의 대응도 아쉽다. 기자가 언성을 낮추도록 진정시키는 것이 프로다운 자세였다. 사석에선 기자에게 반말을 쓸지언정 그 상황에서 ‘반말’로 함께 언성을 높인 것은 적절치 않았다.

누구나 실수는 한다. 대통령도 실수할 수 있다. 문제는 실수를 인정하지 않을 때 벌어진다. 실수엔 공감할 수 있지만, 인정하지 않고 더 나아가 잘못된 방향으로 수습한다면 그 혼란은 나라를 흔들 수도 있다. 바이든 미 대통령도 기자와의 설전 이후 “좋은 기자가 되려면 부정적 견해를 갖춰야 한다”며 사과했다.

도어스테핑이 언제 재개될지 알 수 없다. 대통령실의 고민도 클 것이다. 재개를 해도 걱정, 안 해도 걱정 딱 그런 마음일 것이다. 분명한 건 기존과는 다른 형식의 도어스테핑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무늬만 도어스테핑’이 되지 않을지 걱정이다. 역대 정부 최초로 도입한 이 제도가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결국 시도로 그치게 될까 우려된다. 우린 ‘소통(疏通)’하는 대통령, 소통(疏通)령을 원한다.

조성아기자 j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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