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수 LH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
뒷간이 집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수세식 변기와 하수도 덕분이다. 하지만 역사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화장실은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중세 유럽에는 화장실이 부족해 거리에 오물이 넘쳐났고 악취가 코를 찔렀다. 하이힐이 거리에 있는 오물을 피하기 위해 발명되었다는 주장까지 있을 정도다.
하수처리라는 개념은 산업혁명으로 환경오염 문제를 가장 먼저 겪은 영국에서 시작됐다. 결정적 계기는 콜레라였다. 1850년대 콜레라가 확산되고 그 전염 경로가 오염된 물임이 밝혀지면서 하수처리시설 설치가 본격화되었다. 우리나라의 하수처리 역사는 1976년 청계천 하수종말처리장 준공으로 시작되었다. 1980년 초에 10%가 채 되지 않던 하수처리율은 2020년 기준 95% 수준까지 높아졌지만 하수처리장은 악취와 경관 때문에 도시의 대표적 기피시설이 되어 버렸다. 오래 전 멀수록 좋다고 생각했던 뒷간 신세가 된 셈이다.
도시가 확대되면서 하수처리장을 설치하기에 적합한 곳을 찾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설치 위치를 두고 주민 간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멀수록 좋다고 생각했던 뒷간이 우리 동네에 들어온다고 하니, 지역주민들의 반대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 갈등을 해결할 힌트는 뒷간이 화장실로 변신했던 과정에서 얻을 수 있다. 뒷간이 화장실이라는 이름으로 집안까지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뒷간이 가진 악취와 지저분함을 해소한 덕분이다. 도시의 뒷간이라 할 수 있는 하수처리장이 도심으로 들어오려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도 악취와 경관이다.
시설을 지하에 설치하고 지상에 공원을 조성하는 것이 일반적 방식이다. 다행히 이런 접근이 늘어나면서 주민 반응도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의 수지하수처리장이 좋은 사례다. 뒷간이 화장실로 이름을 달리한 것처럼 하수처리장 대신 ‘레스피아’로 불린다. 이름만 바꾼 것이 아니다. 기존 하수처리장이 가지고 있던 악취와 혐오시설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악취를 완벽히 해결하고 지상에 스포츠센터, 문화예술 공간을 설치했다. 뿐만 아니라 근처에 백화점도 위치하고 있다. 뒷간이 악취와 지저분함을 해결해 집안으로 들어왔던 것처럼 하수처리장도 악취와 경관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면서 도심의 휴식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는 셈이다.
그간 멀수록 좋은 하수처리장은 대표적 님비(NIMBY) 시설이었다. 님비는 ‘Not In My Back Yard’로 ‘내 뒷마당에는 안 된다’는 뜻이다. 님비시설의 반대는 핌피(PIMFY) 시설이다. ‘Please In My Front Yard’라는 뜻이니, 제발 내 앞마당에 설치해 달라는 시설이다. 지하철역, 병원 등이 대표적이다.
님비시설 취급을 받는 하수처리장을 핌피시설로 만들 수는 없을까? 몇 가지 사항만 해결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악취와 경관이다. 경관은 시설을 지하화하면 가능하므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장 민감한 악취는 고민이 필요하다. 다행스러운 점은 악취를 제어할 수 있는 다양한 공법이 개발되어 있고 용인시의 사례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효과가 입증되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경관과 악취만 해결하면 주민들이 하수처리장을 핌피시설로 여길까? 아니다. 겨우 님비시설 신세만 면한 것이다. 핌피시설이 되려면 지역 주민들이 선호하는 시설이 포함되어야 한다. 실내체육시설, 도서관, 청년창업센터, 대형마트 등의 시설을 하수처리장과 연계하여 개발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물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악취를 제어할 기술개발과, 하수처리장 상부를 다양한 용도로 복합개발하기 위한 관련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지역 주민의 의견을 물어 공감대를 형성해야 함은 물론이다. 최근 이런 변화를 감안해 LH가 하수처리장을 주민들이 선호하는 핌피시설로 만들기 위한 연구를 시작한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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