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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주로칼럼] 법정최고금리 ‘선의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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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1-18 15:04:37   폰트크기 변경      

# 생활고에 시달리던 A모씨는 2020년 한 포털사이트를 통해 불법사채업자에게 105만원을 대출받았다. 3주 뒤 그가 갚은 돈은 135만원. 하지만 다시 급전이 필요해 105만원을 또 대출받아 한 달 뒤 147만원을 갚았다. A씨가 받은 대출을 연이자로 환산하면 연 471~497%에 달한다. 


지난 5일 한국대부금융협회가 발간한 ‘금융소외의 현장 불법 사채로 내몰린 서민들’ 사례집에 나온 고금리 불법사채 유형이다.

법정최고금리는 변동금리건 고정금리건 심지어 연체이자도 최고이자율을 초과하게 되면 그 부분은 무효로 한다. 2002년 10월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고, 당시 최고금리는 시행령을 통해 연 66%로 정해졌다. 이후 일곱 차례 시행령이 개정돼 2021년 7월 20%까지 내려왔다. 또 개인 간 금전대차에 관한 이자율을 정하고 있는 이자제한법상의 최고금리도 연 20%다. 

법정최고금리는 대출 시장에서 저신용자를 보호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벌어진 실상은 취약계층 배려 의도와 사뭇 다르다. 기준금리 급등에 자금조달 부담이 커지자 금융권은 대출을 아예 ‘셧다운’했다. 서민금융연구원은 2018~2021년 법정 최고금리가 27.9%에서 20%로 하락하면서 제도권에서 불법 사금융시장으로 64만~73만명이 이동했다고 추산했다.


취약계층이 대출을 받지 못하면 차선지는 살인이자를 매기는 불법사채시장이다. 경제정의를 실천한다며 밀어붙인 최고금리 인하 정책이 취약계층을 오히려 지옥으로 인도한 셈이다.

최근 기준금리가 단기간에 급등하며 최고금리 규제를 둘러싼 논란을 촉발했다. 한국은행이 7회 연속 올린 기준금리는 현재 3.50%로 정점 논란이 일지만, 미국 기준금리 대비 현재도 1%포인트 낮다. 현재 정치권은 기준금리 인상과 배치되게 경쟁적으로 법정 이자율 인하를 추진하고 있다. 


현장 분위기는 이미 심각하다. 최고금리가 20%에 묶이면서 2금융권은 역마진을 우려, 대출을 중단하고 있다. 법정최고금리가 시장을 교란시키자, 금융위원회는 새해 여야 지도부와 정무위 국회의원들을 돌며 시장금리에 따라 탄력적인 적용을 받는 법정최고금리 개편안을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결국 보류된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권 부정기류가 강한 탓이다. 오히려 현재 국회에는 법정최고금리 인하 법안이 줄줄이 상정돼 있다. 어려운 이들에게 더 낮은 금리로 대출을 내준단 논리지만, 내심엔 최고금리 인상 시 악화될 여론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법정금리 인하 관련, “신용이 높은 사람은 낮은 이율을, 신용이 낮은 사람은 높은 이율을 적용받는 구조적 모순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시장을 전혀 모르는 소리다. 신용에 따라 금리를 다르게 책정하는 게 시장원리다.

금융권의 의사 결정은 경제 전반과 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 많다. 작게는 조직에서 크게는 국민에 미칠 파급효과를 보지 못하면 ‘리스크’는 커진다. 도미노 같은 경제위기를 겪지 않으려면, 새해 금융당국과 정치권 리더들이 민생을 아우를 정책과 법안에 대해 실질적인 시장원리에 기반해 지혜를 모을 때다.

심화영기자 dorot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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